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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3. 2023

씨유

23-01-20


농구를 좋아한다는 트로이는 갑자기 박스에 공만한 두루마리를 던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여섯 번을 실패했다. 결국 넣지 못하고 나에게 해보겠느냐고 넘겨줬는데 나는 두 번만에 성공하고 말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트로이의 기를 죽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마지막 날인만큼 여유 있게 일하라는 토미의 말에 따라 조금은 느긋하게 패킹과 피킹을 했다. 인사들도 나누고, 카메라를 들고 가서 사진도 찍었다. 마침 구색 내기 좋게 가볍고 큰 박스가 있길래 마크에게 컨셉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제임스가 Counting down the minutes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떠나는 게 아주 신나지도, 후련하지도, 기쁘지도, 그렇다고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


다만 토미를 아직 설득하지 못 한 기분이 들어서 토미 옆에 붙어서 집중 공략을 펼쳤다. 토미한테는 나는 원래 한국인들 상대로 심리적 안정을 찾게 돕는 게 목표라 호주사람인 너에게 굳이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네가 소중한 내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토미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

"나는 그 책이 트로이나 로키한테 더 필요하다고 믿어. I believe that book is more needed to troy or rockie"

"하지만 저들은 후회가 부족해"

"그거 부족하면 지금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어"


이 말이 토미한테 아주 쪼끔 먹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글쎄 토미가 후회한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분명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을 느낄 거란 걸 어렴풋이 안다. 그랬더니 토미는 너, 나에게 Plant the seed를 하는구나 했다. 맞다. 씨앗을 심었으니 그 씨앗을 잘 싹 틔우는 건 토미의 몫이다.


이 모든 건 소피의 가르침이고, 그걸 엮어 내가 호주 떠나기 전에 원고를 완성시키는 게 목표라고 했더니 토미가 나보고 "아하, 책 팔려고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구나?" 한다. 한국책으로 낼 거거든? 발끈하니 토미는 읽어보고 싶으니 전자책으로 번역해서 내달라고 했다. 소피의 명언은 베스트셀러가 될 책을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작가가 너무 쌩초보라는 큰 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말이다.



요 며칠 팀은 내가 곧 떠난다고 도시락을 가지고 내려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원래 사무실 직원은 위층에서 따로 밥을 먹는데 내가 밥 먹는 시간에 맞춰 내려온다. 아쉽게도 오늘 팀은 정말 바빠서 오전에 잠깐 만나고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왔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이제 인스타 친구가 됐다. 앞으로의 근황을 계속 알리기로 약속했다.



멀리와 토미의 인스타도 알게 됐다. 토미는 내가 가기 전에 갑자기 사라지더니 모자를 챙겨 왔다. 완벽한 이곳의 크루가 된 기분이랄까. 나중에 다시 시드니에 오면 무조건 이 회사로 다시 돌아오라고들 한다.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많이 지지해 주고 응원해 준 나의 시드니 가족들의 표정과 눈빛을 잊지 못할 거다. 그 속에 담겨있는 따뜻함을 마지막까지 한가득 느꼈다. 덕분에 나는 이 먼 나라에 와서 고향과 같은 그리움을 품게 됐다.


멀리는 굿바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한 댔다. 셰인은 우리가 다음 주 월요일에도 다시 만날 거 같이 인사를 했다.

우리의 인사는 언제나, 씨유


토미와 레이
마크
트로이와 셰인. 원래 셋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둘이 어찌나 가까이 붙던지 내가 압축 되는 것만 같아 빵 터진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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