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1
시드니의 마지막을 어디서 장식하면 좋을까 하다가 노스시드니로 향했다. 지날 때마다 기분 좋은 하버브리지 위에서 사진을 남겨본다.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를 이곳이다.
웬디스 시크릿 가든이란 곳을 찾았는데 불꽃놀이 명당을 찾아 한참 헤맸던 곳 중 한 군데였다. 일을 하며 신기해서 기억해 둔 라벤더 베이가 앞에 위치해 있다. 공원에는 돌잔치를 하는 것처럼 한 아이의 파티 같은 게 한창이다. 공원 한구석에 테이블을 놓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두어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나는 울창한 나무그늘 아래 앉아 그들을 보았다가, 저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에도 시선을 두었다가, 요즘 일상에서 받은 자극들을 비워내는 것처럼 가만있었다.
오늘 어떻게 이 원피스를 입고 나올 생각을 한 건지 바람에 치마가 날리니까 마음이 살랑거린다. 노스 시드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골목 골목을 지날 때마다 시드니의 바다가 얼핏얼핏 보인다.
구글 맵 리뷰를 보고 찾아온 카페다. 근데 이곳은 또 전에 노스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풍광에 반한 곳 앞에 위치해 있다. 두 번 와봤다고 여러 장소들에 추억이 어려있다.
라떼를 하나 시키고 보니 옆에 테스터가 있다. 다 한 번씩 마셔봤는데 정말 충격적인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먹어본 적이 없다. 컵을 딱 집어 들면 그때부터 향이 코를 찌른다. 턱까지도 안 올렸는데 코 끝에 커피 향이 진동한다. 이런 원두는 어디서 볶는 건지 궁금해서 바리스타님께 물어봤는데 영어가 짧아 궁금한 걸 더 묻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바리스타가 오고 보니 대화를 나눈 바리스타분이 한국분이었다. 잘 됐다 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들어보니 한국인 사장님이 전적으로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큰 지분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고, 꽤나 큰 곳에서 원두를 볶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클래스 같은 건 아직이라고 한다. 이런 원두를 볶는 법을 가르치면 대박이 날 텐데 말이다. 콜드브루를 서비스로 받았다. 그러다 나는 원두를 샀다. 소피의 남편인 대니가 커피를 자주 마신다.
커피를 샀다는 핑계로 마지막까지 소피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전해주고 가야 하니 소피에게 편지를 썼다. 소피와 눈물 바람으로 헤어지고 나서 어제도 소피를 만났고 오늘도 만나게 됐다. 새 쉐어하우스 오픈을 준비하느라 바쁜 소피는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못 먹었댄다. 버거를 사 와줄 수 있느냐 하기에 나는 맥도날드에 패밀리 팩을 사러 갔다. 생각도 없이 DT에 들어갔다가 나는 혼을 쏙 빼고 왔다. 매장 안에 들어가면 키오스크가 있지만 DT는 전부 말로 주문해야 한다는 걸 깜빡 잊은 거다. 거기다가 패밀리 팩을 사려고 보니 옵션이 많다. 자꾸 Which?라고 묻는데 어떤 옵션이 있는지를 묻는 말이 순간 기억이 안 나서 한참을 당황했다.
"Can you tell me which option is there?" 이런 장황한 문장이 겨우 생각난 덕에 버거 몇 개에 음료 사이즈를 어떻게 할 건지 옵션은 결정했는데 다음엔 또 버거 종류를 골라야 한다. 우선 옵션이 뭐 있는지 또 물었는데 옵션이 잘 들리지도 않는다. 게 중에 들은 옵션 한 두 개로 주문을 하고 나니 또 음료수 옵션을 고르란다. 음료 옵션은 대충 했으면 됐을 텐데 그걸 또 설명을 다 들었다. 소스도 정하래서 그것도 옵션 설명을 다 듣고 정했다. 내 머릿속은 완전 백지장이라서 맥도날드에서 먹을 수 있는 소스의 종류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케찹이나 마요네즈조차도.
나는 대책도 없이 짐도 안 싸고 나가서 11시까지 짐을 쌌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건데도 이런 준비성을 가지고 있다. 맥도날드 DT도 주문을 말로 해야하는 걸 모르고 들어가는 대책없는 나다. 그래도 오늘 주문을 잘 마치고 버거를 잘 받았듯이 어딜 가서도 이렇게 얼렁뚱땅 잘 해치우지 않겠나? 아무튼 내일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나의 시절,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