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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5. 2023

누구신가요?

23-01-22

그러려고 그런게 아니었는데 날짜를 잡고 보니 설이다. 호주에서는 설이 오는 걸 알기 어려웠다. 설에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다. 이런 시작이라니 징조가 좋다.


어제는 길을 걷다가 눈 바로 아래 빗방울을 맞았다. 그래서 꼭 눈물을 흘린 거 같은 모양새가 됐다. 이게 뭘까? 싶었다. 괜히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거란 건가? 같은 생각도 들고, 이동을 앞두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을 조금 했다. 근데 떠나는 길에 느낀 건, 시드니가 슬퍼하고 있는지도 몰라 같은 생각이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나는 너른 보살핌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호주에 와서 그런 기운이 계속 느껴진다. 시드니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날이 쨍쨍하고 맑았다. 마치 나에게 실컷 놀고 다니라는 것처럼. 작년에는 40도까지 올라갔다는데 올해는 계속 따뜻한 정도였다. 조금 더운 날엔 일하기 힘들었는데, 그런 날이 며칠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드니를 떠나는 길 만나는 신호등마다 빨간불이다. 모든 신호에 다 멈춰 섰다. 발목을 붙잡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다. 주말마다 맑았던 날씨였는데 오늘은 비가 온다. (그리고 내가 떠나고 시드니에는 집을 허물 정도의 대형 태풍이 몰려왔다). 빗길 운전은 우려가 됐는데 그런 걱정을 할 만큼 비가 많이 오는 편이 아니다.



아쉬웠던 울런공 드라이브를 다시 들렀다. 이 드라이브를 저번에 놓쳤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오늘 날도 이러는 거 보니 다음번 언젠가 기회가 돼서 다시 오려나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



점심은 따로 샌드위치를 싸서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엄청난 마케팅이 보였다. "여기서 몇 마일 더 가면 식당이 있어요!" , "금방이에요! 얼마 안 남았어요", "다음 지점에서 왼쪽으로 가야 해요" 같은 간판이 끝없이 나왔다. 그 말에 이끌려 나는 급하게 차를 돌렸다.



올리브 농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올리브 플래터를 시켰는데 올리브가 정말 짜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이 정말 맛있었다. 미식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식사를 만끽했다. 이 풍경 앞에서 식사할 수 있게 된 게 정말 행운 같다.



오늘의 도착지는 캔버라다. 마크에게 추천받은 갤러리에 들리려고 했는데 뮤지엄을 방문하게 됐다. 외관 조형조차도 예술적이다.



호주에서 뮤지엄에 들리면 애보리지널(원주민)에 대한 이야기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아이들이 보며 배울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콘텐츠도 풍부하다. 전시를 보는 내내 느낀 건, 이 박물관을 꾸린 사람들이 정말 고생했겠다는 거였다. 하나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게 하는 양질의 내용들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아름답고, 사용된 전시품들의 종류도 색다르면서 풍부했다.


"Do you having to the exit?" 오늘 배운 문장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나니 밖으로 비가 오고 있다. 안내하는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오늘 드라이브를 하며 들렸던 노래가 몇 곡 있다. 그 모든 노래가 마치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주는 듯했는데 두 곡이 특히나 나를 일렁이게 했다. 데이식스 -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와 태연 - Gravity가 그 주인공이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을 거라 나에게 말해 주었고, Gravity는 방황을 청산하고 따스한 "너" 덕분에 이렇게까지 멀리 왔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내 인생이, 누군가 잘한다며 보상을 마구 쏟아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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