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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6. 2023

누군가의 인생 최고 선셋 앞에서

23-01-23


오늘은 7시간을 운전해서 멜버른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어제 운전하는 내내 오늘은 날이 맑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정말 아침에 하늘이 맑다. 어쩐지 드라이브가 기대가 된다.



운전을 하며 핸드폰을 조작해선 안 되는 거지만 도로에 차도 한 대 보이지 않고, 차에 크루즈 모드가 있으니 잠깐 영상을 찍어봤다. 신나는 드라이브 노래를 틀어놓고 달리자니 기분이 정말 좋다! 중간에 말 하긴 곤란한 곤욕을 좀 치렀지만 순탄한 여행은 재미가 없으니 그것도 즐거운 해프닝이려니 하며 웃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도 좀 마셨는데 정말 졸리다. 날이 맑아 좋다 했더니 흐린 날의 장점을 알게 됐다. 해가 너무 뜨겁고 장시간 운전을 하려니 차가 열을 받아 속도를 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졸음쉼터에 들러 한숨 자보려 해도 더워서 잘 수가 없었다.



우선 내가 지금 이동하는 지역에 일자리를 알아보고 레쥬메도 계속 넣어놓고 있는데 이런 오퍼가 들어왔다. 시드니에서 일하던 조건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동하는 지역에서 일하는 조건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는데 장기간 온고잉이 가능하다니(고정적으로 일을 준다는 말이다), 게다가 시급도 정말 세고, 낮에 일할 수 있단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았다. 인생이 신기하게 풀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멜버른에 거의 도착해서 큰 다리를 지나 10분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시내에 진입하다가 다시 고속도로로 빠지게 됐다. 덕분에 소요시간이 30분가량 늘어났다. 내가 도대체 이걸 왜 타게 됐을까? 지금 장시간 운전하느라 정말 힘든데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했다.


사실 나는 시드니보다 멜버른에서 워홀 생활을 하고 싶었다. 시드니보다 멜버른이 더 예술적인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도시 분위기 자체도 얼핏 봤을 때 더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내가 다리를 건널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멜버른 생각보다 별론데?', 그리고 그 다리를 다시 건너오면서 생각했다. '아, 이 멜버른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본 멜버른은 근사했다.


멜버른 시티에는 트램이 다니는 길이 차도로도 쓰여서 운전 난이도가 시드니보다 조금 어려운 편이었다. 그렇게 허둥대다가 차선을 잘 못 들어 깜빡이를 켰다. 퇴근 시간에 겹쳐 한 신호에서 세 번 정도는 기다려야 갈 수 있는 길 위였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고 내가 진입하려는 차선의 뒤차가 멈춰서 있다. 호주는 선팅에 제한이 있어 대부분 차의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뒤 차를 돌아보니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한다. 저 뒤에 차들이 한참 서 있는데도 나에게 그런 배려를 해준다. 생각지도 못한 친절함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러니 멜버른을 다시 생각하라는 거였구나.


그리고 웬 호수와 공원을 지나면서 30분을 돌아오며 씩씩대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았다. 화창한 햇살아래 러닝을 하고 또 걷던 사람들과 윤슬이 반짝이던 호수가 내 마음에 평화를 데려왔다.


멜버른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다. 아까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전화가 왔었는데 아직 나는 영어를 하면서 운전까지 할 정도로 멀티가 되지 않아서 전화를 못 받았었다. 일자리 제안 전화인 줄 알았더니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다. 내가 도착한다고 했던 시간보다 한참 늦어 강아지 산책을 못 시켰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조금 미안해졌다.



예약할 때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뷰가 더 좋다. 저 멀리 보이는 해변은 오늘 내가 일몰을 보러 갈 해변이다. 원래는 차를 두고 가고 싶었는데 해가 벌써 많이 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사서 해변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 주차장이 16불이다. 시간당 6불이라는데 지금 시간은 시간당 페이도 안 되나 보다. 말도 안 돼. 지금 지역이동을 하며 배편과 숙소 비용으로 돈을 꽤나 많이 썼는데 주차비로 16불이나 내게 되다니, 지갑에서 피눈물이 난다.



해질 무렵의 세인트 킬다 비치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됐다. 시드니에서도 온갖 인종들이 섞인 모습이 참 신기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드니에서는 조금 분리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저마다 모국의 사람들과 더 친하게 어울리는 것 같은 모습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는 정말 많은 다양한 외형의 사람들이 모두 친구다. 같은 호주인데도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누군가 세인트 킬다 비치에서 본 선셋이 본인 인생 최고의 선셋이었다고 했다. 나는 바다 위에서 해지는 걸 꽤나 많이 봤었기에 에이, 그래도 여기가 그 정도가 되겠나 싶은 허세 섞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맞았다. 진짜 멋있었다. 붉은 황홀함에 갇혀버렸다. 오늘 하루종일 운전을 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을 정도로 근사한 오늘이다. 이런 멋진 풍경이 계속되니 나는 어제 했던 생각을 더 멈출 수 없다. 이런 멋진 걸 경험하게 해주는 어떤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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