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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7. 2023

예술을 사랑한 도시, 멜버른

23-01-24


5시 50분쯤 어쩌다 눈을 떴는데 풍경을 보고 화들짝 놀라 그대로 일어났다. 아침부터 풍경이 경이롭다.



이런 뷰를 보며 조식을 먹고 있자니, 끝내주게 즐겁다. 원래는 1박만 예약했다가 하루를 연장했다. 



숙소 주인이 에어비앤비에 업데이트해놓지 않은 비밀이다. 이 집에는 강아지가 있다. 미야는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꼭 만져달라고 무릎 위를 올라탄다. 그리고 진짜 인형같이 생겼다. 복슬복슬하니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아침엔 어제 본 공원에서 러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이렇게 숨도 안 차고 즐거운 걸까? 뛰는 내내 흑조들이 둥둥 떠다 다니는 호수와 이 호수를 둥글게 둘러싼 시티의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풍경에도 기분이 좋고, 갑자기 비가 와서 급변한 날씨도 재밌었다.



호수에는 조정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서너 팀의 학생들은 강을 가로지르고 코치들은 자전거 위에서 응원하는데, 그 에너지가 나에게 바로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세인트 킬다 해변까지 조금 걷고, 여러 힙한 건물들을 보며 산책을 즐겼다. 집도 예쁘고, 상점들의 개성도 멋지다. 내가 그려왔던 멜버른의 모습 그대로다.



시드니 레이블 카페에 들렀을 때 바리스타님께 추천받았던 멜버른 카페 도장 깨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추천받은 카페로 가는 길이 고풍스럽고 멋지다. 그리고 걸으면서 느껴본 멜버른은 내게 베를린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베를린을 들렀을 때 그랬다. 사진으로 봤을 때 별 감흥이 없었던 그곳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달랐다. 수많은 예술작품 같은 거리의 풍경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어제 다리를 건널 때 보였던 고층 빌딩의 사이로 들어와 보니 온갖 거리와 사람들이 모두 예술이다.



야라강 앞에 앉아서 계속 유학을 생각했다. 멜버른의 심리학과는 세계 17위라고 한다. 여기서 심리학을 전공하면 영주권을 얻을 확률도 높다 하고. 세계 17위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학업 성취가 먼저 따라줘야겠지만, 이곳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멜버른 사람들은 시드니와 달리 차림새나 외형이 더 개성 있다. 그런 외형을 하고서 눈빛은 더 착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착한 기운이 폴폴 풍겨온다. 멜버른에 와서 공부하며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조정을 배우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지에 대해.



시드니는 호주의 NSW주에 있고 멜버른은 호주의 VICTORIA 주에 있다. 멜버른에는 빅토리아주립갤러리가 있다. 지금까지 들렀던 호주의 박물관도 좋았지만 갤러리의 전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신선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소지품을 X레이로 촬영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의자를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시켜 의자의 겉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도 있었다. 카펫이 마치 녹아 흐르는듯한 모양의 작품도 있었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것처럼 녹아내리는 벽에 붙잡힌 시계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조차 작품들이 붙어 있었다.



내가 죽으면 사운드클라우드 노래를 지워줘라는 영상 작품이 있었다. '누군가 꽃을 선물해줬으면 하는 마음', 내가 이전에 가져봤었던 마음이라 저 마음이 공감된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꽃을 선물해 줬기 때문에 그 마음이 괜찮아진 게 아니라, 방 안 화병에 내가 선물한 꽃다발을 꽂아 두기 시작하면서 극복하게 됐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실체가 없는 환상 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갈 바라는 마음은 이뤄지기 어렵다. 이뤄지기 어려운 걸 붙잡고 있으면서 아픔은 시작된다.



널찍한 모자이크식 작품 아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런 곳 아래에 있자면 나는 좀 미친다. 뭐랄까 다른 이들의 예술이 나를 벅차오르게 한달까? 예술을 하기엔 부족한 사람이지만, 나는 예술가들의 예술적 발상을 읽는 걸 사랑한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 보고 돌아가려고 앉아 있었다. 이제 작품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큐레이터인 것 같은 사람이 다가와서 무슨 작품이 제일 맘에 드는지 묻는다. 그곳에 있는 작품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던 나는 당황했다. 대충 답변을 하고 큐레이터의 추천 작품들을 소개받았다. 어떤 느낌이 좋다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큐레이터는 마치 존윅 같은 외형과 풍채를 가지고 있었다. 슈트를 차려입고 짙은 향수의 향기를 풍기며 부드럽게 물어보는 투가 아주 매혹적이었다. 그 순간에 저 향수를 물어봐서 사랑에게 선물로 줄까 같은 생각이 들었던 바람에 유혹당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웨어하우스 코워커였던 마크는 멜버른에서 오래 살았었다. 그래서 멜버른 맛집을 추천받았다. 추천받은 맛집은 라멘집이다. 멜버른의 맛집을 찾아보면 라멘집, 쌀국숫집, 마라탕, 우육면 같은 것들이 나온다. 아시안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멜버른이라는 얘기도 들었던 거 같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길에게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을 했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는지 물었다. 길의 집이 위치한 세인트킬다는 어쩌면 멜버른의 가장 부촌인 것 같다. 잠깐 본 해변과 공원에서도 그 기운이 느껴진다. 게다가 길의 아파트는 5-6층쯤 되는 작은 아파트인데도 철통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테라스 아파트라고 불리는데 테라스도 널찍한 게 주거비가 가늠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무슨 일을 하면 이렇게 살 수 있는지. 길은 여행회사를 운영하다가 식당에서 코칭 매니저 같은 것도 하고 뭐 또 두세 개 일을 더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해야 나중에 늙어서 이런 집에 살며 골프도 치고 테니스도 치고 하며 살 수 있구나. 사실 길의 이력은 소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자 할머니들을 보며 부를 많이 배우고 있다.



오늘은 에어비앤비에서 일몰을 감상했다. 아까 갤러리에서 나왔을 때는 비가 왔었는데 해 질 무렵에는 날이 또 이렇게 맑게 개었다. 이 에어비앤비에서 뽑을 수 있는 뽕은 다 뽑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거였달까? 오늘도 말도 안 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잠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멋진 도시를 얼핏 보고 별로란 평가를 내리다니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생각했음을 반성하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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