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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18. 2023

멜버른 시티 여행기

23-01-25


호주는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이 아주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어딨는지 모르게 있는 경찰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엄청난 벌금 폭탄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지금껏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신호가 걸려있을 때 사용한 것조차 벌금이다. 멜버른까지 오면서 고속도로에서 핸드폰을 조금 사용해 봤다고 간이 좀 커져서 이런 사진을 남겨봤다. 이런 풍경을 남기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큰 용기를 냈다.



에어비앤비 체크아웃을 하고 차를 시티 주차타워로 옮겼다. 커피부터 한 잔 마시기 위해 또 추천 카페에 들렀는데 여기 정말 핫플레이스였다. 사진을 찍고 나서 사람들이 더 우르르 몰려와서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커피와 함께 탄산수를 주는 신기한 카페다. 카페의 올라운더가 내 티셔츠를 보고 "너 그거 어디서 샀니?" 해서 "이거 한국 거야!"라는 간단한 스몰토킹을 나눴다. 이런 작은 인사말에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 들른 곳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다. 이 전경이 유명하지만 이 고풍스러운 장소 말고도 도서관 공간이 다양했다. 도서관이 정말 크다. 이렇게 큰 도서관에는 처음 와봐서 이 덩치에도 압도되고 말았다. 도서관에 앉아 밀린 일과를 조금 해치우는데도 밀려있는 게 하도 많아서 지친다. 졸리고 배고파서 우선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 바깥에는 빈백이 놓여있다. 홀린 듯이 빈백에 이끌려가 누워 잤다. 바로 앞에 체스를 두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한국 아이들이었다. "나 잭이 다 죽었어!!!" 같은 한국말이 자꾸 들려와서 이곳이 호주인지 한국인지 조금 이상한 세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점심으로는 싸 온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에너지가 충전됐다. 전시를 안 보려다가 살아난 김에 전시관에 들렀다. 도서관이 전시회장을 끼고 있는 건 낯선 구조가 아니다. 시드니에서도 이런 전시를 들린 적 있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가 철학, 심리라서 더 그런 게 눈에 띄는 건지 모르겠지만 서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전시들에서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만연하다. 자본주의 생활에 지치고 아팠던 사람들은 심리학을 찾는다. 멜버른 대학의 심리학과가 17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와 영주권까지 줄 정도로 사회에서 지원해 주는 분야라는 게 그 증거 같다.


나는 우리나라도 이 시류를 언젠가 따라갈 거라 생각한다. 내가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런 이미지를 한국에서 그려보는 건 아직 어렵기 때문에 나에게 이 길은 모험이고, 위험이고, 어렵다. 하지만 자본적인 부분을 뛰어넘어 복지에서도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나라가 절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알쓸신잡에 나와 유명해진 유현준 교수님이 우리나라는 공공의 휴식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했던 게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공원이나 도서관들이 해줘야 할 역할을 자본을 들여야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대신하고 있다면서. 공공의 휴식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어떤 느낌인지 이곳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추천 카페에 들렀는데 여기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다. 어쩐지 카페에 오는 길에 본 베이커리가 한국 색채가 강했다. 버터가 아주 많이 들어가 있는 듯한 빵 냄새와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빛깔이 딱 요즘 한국 유행 베이커리의 쇼케이스 같았다.



강변을 걷는데 옆으로는 조정 배가 지나간다. 큰 나무들 아래로 그늘이 적절하게 드리우고 햇살은 호수를 반짝거리게 한다. 이 평화가 좋아 보타닉 가든으로 향하던 중에 아무 벤치에 앉아서 이 시간을 그냥 누렸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 안에 있음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



보타닉 가든을 찾았다. 기대한 풍경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좋다. 신기하게도 낮은 곳까지 가지가 있던 나무 아래에 숨은 듯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과,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늘지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걸으면서 생각이 많이 비워졌는지 지식이 들어오니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요즘 내 머릿속은 어떤 글을 넣으면 아이디어가 뭉쳐져 뿅 하고 나오는 기계가 된 것만 같다. 기계라고 하니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나에겐 기분 좋은 일이다.


멜버른은 변화무쌍한 날씨로 유명하다. 하루에 4계절이 있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작은 양우산을 챙겨 다니는 나는 비가 오던 때 그걸 펼쳤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자그마한 우산 살이 다 하나씩 구부러져있다. 멜버른의 날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가 언제 올지 모르니 사람들은 가벼운 우산을 다들 챙겨 다닌다. 바람이 많이 부는 덕에 연약한 살은 하나씩 부러져 버렸다. 내 우산이 그랬듯이.



트램을 잘 못 타는 바람에 주차 타워가 문 닫는 시간 안에 못 갈까 봐 아주 곤욕을 치렀지만 차를 끌고 일몰이 멋진 곳에 또 찾았다. 원래 같으면 볼 수 없는 일몰이었다. 타즈메이니아로 가는 배편 시간이 늦춰졌다. 그 덕에 시간이 맞았다. 내가 떠나온 후 시드니엔 태풍이 왔다. 멜버른에 와서는 3일 내내 끝내주는 노을을 봤고.



소피와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는 따로 신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운명의 여신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큼직한 운명을 따라가고 있고 그중에 어떤 곤욕과 혼란이 있을지라도 결국 좋은 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그런 바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랄까.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 우리 둘만 비밀처럼 나누는 이야기다.



한 시간 반을 달려 크루즈 선착장에 도착했다. 크루즈의 입항시간이 지연돼서 한참 대기하다가 크루즈에 탔다. 생각보다 최첨단 문물이 들어와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호주. 누군가는 느리다고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내가 느낀 건 가끔 이렇게 다르다. 이 티켓을 스캔해야 리클라이너 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승선권에 어떤 칩이 심어져 있는 듯하다. 승선 절차를 진행할 때도 차 번호만 스캔하고 내 이름이 적힌 승선권을 바로 뽑아줬다.


새로운 것들이 또 한가득 넘쳤던 하루를 크루즈의 리클라이너에서 마무리해본다. 정리할 새도 없이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날들이라 조금 정신없지만 소피와 오늘 통화했을 때 소피가 그런 얘기를 해줬다. 위험을 감수하며 생생하게 살아가라고. 그런 생생함 덕분인지 고생인 것만 같은 일정에도 나는 살아있는 감각들에 기쁘게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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