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1
일을 구하긴 했지만 바로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계속 이력서를 돌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구직 중 이다. 태즈메이니아에서 일을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태즈메이니아는 시드니나 멜버른, 브리즈번에 비해 규모가 작은 도시인만큼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대도시에 비해 영주권을 얻기 더 쉽다. 영주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호주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전공으로 대학 과정을 수료하면 좋다. 호주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주고 국력을 높인다.
그 덕에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일자리를 간절하게 구하는 사람이 많다. 나중에 함께 일하던 코워커는 쓰리잡을 하고 있었는데, 농공장 일과 창고 일, 그리고 약국 일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 사람이 여러 일을 차고 있으니 일자리는 더욱 부족할 수밖에.
그런 와중에 다행히 내 이력서를 받고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곳이 있었다. Aquaculture라고 적혀 있었는데 가보니 양식장이다. 마치 전복처럼 생긴 어패류를 양식하고 있었다.
실험실 같은 곳까지 두고 새끼 어패류를 점점 크게 키우고 있었는데, 2500만 새끼들을 150만까지 살려내는 공정이 있다고 했다. 굉장히 중요한 일 같아 보여 "그거 정말 중요한 일이네요!" 했더니 인터뷰 담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이걸 수확하고, 청소하고, 먹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여기 있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내가 할지도 모를 일 또한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란 걸 알려주는 말이었다.
일의 강도는 그리 세 보이지 않다. 근무 시간은 고정적이고 좋았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나는 혹시 일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어제 인터뷰를 다녀온 샐러드 공장에서는 액세서리를 금지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걸 묻고 의외의 답변을 받았다. 여기서는 인종차별, 성차별, Bully(괴롭), Bossy(두목 행세 하기), 폭력, 알코올, 드럭(호주는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꽤 있다)이 금지되어 있어라고 한다.
이게 그냥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차별이 좋지 않은 거라는 인식을 매니저들은 주입받은 듯했다. 웨어하우스에서도 매니저도 실천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걸 아는 채 했었다. 어제 인터뷰를 다녀온 회사의 인덕션(채용 절차 중 하나로 현장 필수 지식 등을 알려준다)에서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심리학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들을 이런 곳에서 만난다. 나 같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 준다. 기본권리를 이렇게 보장해 줄 수 있는 거구나. 흔히 말해 복지란 돈으로 뭔가 지원해 주는 걸 생각하지만 나는 이런 것 또한 큰 사회복지 시스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인터뷰를 보고 온 회사의 호주인은 나를 배려해 아주 느린 영어를 구사해 줬다. 전에 일했던 창고에서는 영어에 서툰 사람들과 일해본 경험이 없던 호주인들이 대다수라 말이 아주 빨랐다. 이곳에서는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빠른 영어는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걸 아는 거다. 호주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 인종차별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보다 포용하는 사람들의 너른 마음을 더 자주 느낀다.
한인잡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빨리빨리, 일 제대로 못하면 구박받던 경우를 종종 봤다. 여기선 말이라도 "일 모르면 무조건 다 물어봐. 여기 사람들은 물어보는 걸 좋아해. 처음부터 잘할 수 없어. 그 속도 따라가려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이렇게 한다. 토미도 "Zoe! Take it easy!"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해외에서 살아보면 좋은 점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