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9
샐러드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됐고 처음으로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이상한 건 일이 재밌었다는 거다. 한 번에 딱 퍼올렸을 때 샐러드 중량을 맞추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국에 가고 싶었다. 이 삶이 조금 지루해졌다. 한국의 삶은 더 지루했지만, 그 지루하고 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마도 샐러드 공장의 냉기가, 서울의 겨울 아침 공기와 닮아 있어 그런 향수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부풀었다가 꺼지고 흔들렸다가 겨우 다잡고 그랬다. 집 주변 해변에서 러닝을 하고 모르는 길을 탐색한다.
잼공장에 가서 파나코타를 포장했다. 그리고 여기 생활이 조금 재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를 가만 둘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최선을 다 해 바꾼다. 어제는 농장에서 일을 했다. 샐러드 공장으로 가는 상추들을 심는 작업이다. 커다란 기계로 모종을 떨구면 살짝 토닥거려 뿌리가 박힐 수 있게 한다. 그리 힘들지 않다. 요즘 생활이 재미없는 이유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아서다.
어제 함께 일 한 코워커 중에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K 드라마도 좋아한다고 하고.
말이 너무 빨라서 반쯤은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호주 아주머니 메리앤과 한참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집에 와서 매일 같이 새 일을 찾아보고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매일 어디로 갈지 모르고 몇 시에 시작할지 모르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늘 윈도우 배경화면에 치앙마이가 떠서,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 치앙마이 글을 읽었다. 지금 워킹이 조금 있지만 내 삶이 마치 디지털 노마드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삶이 소중해졌다. 나중에 그리워할 거면서 왜 이렇게 불만을 품는지 모르겠다. 미래에 지금을 돌아보며 에이그 할 거다. 이때를 더 즐겼어야 했는데 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여행 다니기로 결심한다. 요즘 읽는 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진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실수와 잦은 잘못 때문에 그런 속박에 빠져들었다가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아직 나는 실수를 하고 잘못을 더 할 수밖에 없지만 이 실수 끝에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내가 어느 곳에 서게 될지 모른다. 그 꿈의 자리를 위해 더 흔들리는 거라면 지금의 나, 충분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