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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05. 2023

짝사랑을 그만두는 방법

짝사랑 해본 적 있긴 하냐?

얼마 전 짝사랑을 토로하는 친구 D와 대화하던 중이었다. 진심으로 경청하며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리던 내게, 그 친구가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반사적으로 “당연하지!”라고 외쳤더니, 그 친구는 놀라며 내가 짝사랑이랑 무척 안 어울린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내 평생 솔로가 아니었던 순간이 거의 없는데 그동안에 좋아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았을 리가. 하긴 이 친구한테 한 번도 연애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없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가도, 나름 친한 사이인 그 친구가 나를 그렇게 봤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오히려 내 인생은 짝사랑의 연속이며, 나는 짝사랑만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연애경험이 없던 나를 두고 선배 몇 명은 진지하게 내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더란다. 정말 남자 좋아하는 거 맞냐고. 내가 그 정도로 이성한테 관심 없어 보였다는 게 충격이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사실 그 순간에도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티가 안 났다는 사실을 내심 다행으로 여기며 흐뭇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고도 귀여운 착각이다. 나는 마치 정체를 들키면 죽는 마피아처럼 내 마음을 꼭꼭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누구 좋아한대요!”라며 놀리면 그저 어쩔 줄 모르고 부끄러워하던 어린 시절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을 창피한 일처럼 여기곤 했다. 어쩌면 그보다는 혹시 상대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당황스러워하면 어떡할까 싶어서 숨겼던 것 같다. 또, 평온하고 안전한 친구 혹은 지인이라는 관계에 연애감정이 끼어들었을 때 미칠 영향이 무서운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생각해도 대충 떠오르는 나의 짝사랑 대상들에게 철저하게 ‘친구’로 일관하곤 했다. 가끔씩은 소심하게 살짝 마음을 흘리곤 했는데, 그마저도 다 ‘친구’라는 핑계를 댈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 상대가 눈치채고 거절한다 한들, 그냥 친구로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기 위해서. 아, 다시 생각해 보니 결국 나는 내가 거절당할 게 무서워서 선을 안 넘었나 보다. 상대가 거절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아무튼, 나는 이렇게 짝사랑을 하며 살아왔다. 대개 나는 어떤 순간에 내가 짝사랑을 하고 있구나 깨닫냐면, 내 일상의 중심축에 그 사람이 자리 잡을 때이다. 그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맞닥뜨릴 기회를 만들기 위해 그의 주위를 맴돌게 되는 날 발견했을 때. 혹은 전혀 다른 장소에 있더라도 내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끊임없이 쫓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그런 순간에 내가 지금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마치 지구를 당길 수도 다가갈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이 맴돌기만 하는 달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그 사람이 무척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미동도 없는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연애는 보통 분명한 끝이 존재한다. 연애라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짝사랑은 일방적인 감정일 뿐이라 분명한 끝을 맺기 어렵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밤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돌이켜보면 서서히 사그라들어 있었다. 물론 불씨가 완전히 꺼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불씨는 자그마치 4년을 넘게 살아있었다. 무려 중학교 2학년 때 불붙은 감정이었는데, 이 시기는 거의 내 인생의 르네상스이자 나라는 개인의 기원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였다. 내가 그토록 지겹게 말하고 다니는 내 이상형, ‘반바지가 어울리는 웃기고 까불거리는 사람’의 시작이 바로 걔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좋아했던 사람은 더 있었던 것 같으나, 지금까지 기억에 남도록 절절하게 ‘짝사랑’이라는 것을 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반에 흔한 남자애 1 정도였다. 첫인상이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보니 정말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다 내가 다니던 학원까지 같이 다니게 됐고, 그 이후에야 좀 친해졌다. 그럼에도 난 걔보단 걔 주변 애들과 오히려 말을 많이 했다. 나중에도 개인적으로 막 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두루두루 친했던 반 친구 정도로 친해졌다. 사실 좋아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뭐였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걔는 말이 엄청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편도 아니었고, 수업 중에 대놓고 까불대거나 선생님께 농담을 던지진 않았지만 다른 애들이 주도하면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드는 친구였다.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만만한 이미지였던 터라 반 남자애들이 이마를 때리는 등 장난치기 일쑤였는데, 걔도 나한테 편하게 말 걸고 장난치곤 했다. 그렇지만 절대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었고, 다른 애들이 좀 심하게 장난친다 하면 말리기도 했던 것 같다. 걔가 던지는 농담은 재밌고 반가웠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3학년 때 같은 반으로 2년을 지내면서 나는 계속 걔를 좋아했다. 걔 때문에 학교 다니는 일도, 학원 다니는 일도 즐거웠고 시험기간에 주말 내내 학원에 있는 것도 좋았다.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정말 희미하다. 단지 드문드문 기억나는 거라고는 내가 걔를 좋아해서 한 행동들이다. 나는 전 씨고 걔는 정 씨여서 반 번호를 24, 25로 나란히 배정받았다. 그래서 무슨 특별활동을 할 때 앞에서부터 번호순으로 둘씩 짝지으면 나는 23번과, 걔는 26번과 짝이 되는 것이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3학년 올라가면서는 제발 내가 23번이 되길 바랐으나, 3학년 때도 번호가 똑같아서 무척 아쉬워했다. 한 번은 내가 학교 마치고 매일 집에 가서 게임만 한다는 얘기를 듣고 걔가 그 게임을 같이 하자고 한 적이 있었다. 둘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억은 그때 밖에 없는데, 그게 무척 설렜다. 게임은 정말 재미없었고 금방 그만뒀지만, 나한테 게임을 단 둘이 같이 하자고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래도록 두근거렸다.


나는 그냥 그렇게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언제고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걔와 같은 고등학교를 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랐으나 걔는 내가 지원할 고등학교를 쓸 성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걔 때문에 고등학교를 하향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반 애들 다 같이 쫑파티를 하기로 한 날, 앞으로 더 이상 못 본다는 사실에 고백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임 내내 혼자 이별하는 것처럼 울적하다가 모임이 파하기 직전,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걔를 못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붙잡고 싶었다. 그렇지만 걔는 다른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타야 한다며 자리를 일어났고 나는 결국 끝까지 말을 못 했다.


그게 두고두고 사무쳤다. 어차피 앞으로 안 볼 사이라면 말이라도 해볼걸. 내가 그래서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동안 좋아했었다 한 마디인걸. 어쩌면 혹시나 하는 기대 정도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친하지 않은 애매한 사이였던지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연락이 끊겼고, 외우고 있던 걔 생일에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한 통만 겨우 보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걔 생각을 했다. 혹시 랭킹에 오르면 내 이름을 볼까 봐 걔가 하는 모바일 게임을 열심히 하고, 집 근처에 도서관이 없다는 핑계로 걔네 동네에 있는 도서관까지 가곤 했다. 절대 마주칠 리 없을 텐데, 혹시, 하는 마음으로 걔네 집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 동네를 서성였다. 하루는 한창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그래서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었나 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한 시간 넘게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 열심히 하던 SNS에 그 동네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런데 1년 넘게 교류도 없던 걔가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거냐고 댓글을 달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공부하러 도서관 왔다고 답했다.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봤으나, 그 이후로는 반응이 없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감정도 희미해져서 걔를 떠올리는 건 그냥 관성 같았는데, 그 댓글 하나에 다시 파문이 일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도 잠시 비를 피했던 건물도 노래 가사처럼 내가 처량해진 듯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순간도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다시 연락이 온 건 수능 전날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스마트폰을 쓰고 있던 나는 스마트폰 때문에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수능 전날에는 제발 핸드폰 좀 만지지 말고 마지막 정리 하자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집에 왔다. 그렇게 수능을 치고, 친구에게 핸드폰을 돌려받아 전원을 켜자 걔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수능 잘 쳐’. 의미 없는 전체 문자일 뿐일 텐데, 그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쿵 했고, 어제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제야 급하게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답장을 보냈으나, 답은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문자를 끝으로 다시 걔와 닿는 일은 없었다.


걔를 그렇게 오래 잊지 못한 건 걔가 특출하게 잘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졸업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이미 걔의 얼굴조차 흐릿했다. 내가 좋아한 건 단지 내가 좋아하던 모습을 투영한 허상이었을 것이다. 끝까지 고백을 하지 못하고 끝맺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와, 새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해 떠날 곳을 잃은 마음이 합쳐져서 진득하게 남았을 것이다.


친구 D와 짝사랑을 그만두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짝사랑 대상의 싫은 점만 보면 정이 떨어질 거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D는 잘 모르겠다며,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쉽냐, 다른 사람이 어딨냐고 하니까, 그럼 또 다른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로 마음을 털어놓는 것.


짝사랑이 힘든 이유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하루를 좌지우지한다. 가망이 없어 보여도, 혹시, 하는 마음이 상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 내가 보기에 누구보다 완벽하고 멋있어 보이는 상대가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짝사랑을 하는 동안엔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다. 연애를 하면 상대를 더 깊게 알게 되기에, 상대가 마냥 완벽하게 미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짝사랑 대상으로만 남은 사람은 내 기억 속에서 끝까지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박제되어 더욱 아련하고 서글프게 남는다. 차라리 모든 것을 깨부수고 직접 부딪히는 편이 편하고 빠른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 모 아니면 도겠지만, 윷을 던지기 전의 조마조마한 순간을 지속하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니까. 참, 말은 쉽다는 생각이 든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닌데.


옛날 생각을 하니까 엄청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한편으로는 뻐근하다. ‘서브병’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의 로맨스에서 맺어지는 커플을 ‘메인 남주’, ‘메인 여주’라고 한다면, 그 둘 중 하나를 좋아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하는 다른 인물을 ‘서브 남주’, ‘서브 여주’라고 한다. 나는 감정이입도 잘하고 측은지심도 무척 강해서, 그들의 짝사랑을 내 일보다 더 마음 아파하곤 한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는 그들을 더 응원하게 되는데, 이렇게 서브 캐릭터 좋아하게 되는 마음을 서브병이라고 한다. 현실에서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안타깝긴 매한가지이다. 특히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만 내가 받아줄 수 없는 경우가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이렇게 내 짝사랑이든 남 짝사랑이든 전부 가슴 아파하고 나면, 이렇게 사람 마음을 엇갈리게 만든 신이 참 원망스럽다. 그래서 차라리 세상에 연애감정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다 그냥 공상일 뿐.


그냥, 더 이상 짝사랑은 안 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안 했으면 좋겠다. 마음 잘 맞는 사람 만나서 사랑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짧은데, 이렇게 일기에나 끄적거릴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할 마음에 눈물짓기엔 시간이 참 아깝다. 내게 다음 짝사랑이 찾아온다면 빠르게 끝낼 수 있기를. 마음은 숨기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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