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정말 바쁜 달이었다. 마치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처럼 내가 맡은 일들이 죄다 제대로 안 풀렸고, 나는 주문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만 되뇌이며 내 시간과 체력을 갈아넣었다. 그러다가 무리한 나머지 한바탕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일은 많은데 몸은 안 좋고 시간은 촉박하고, 요 근래 들어 가장 예민하고 서럽고 우울했던 시기였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더더욱 혼자 침전하곤 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가 요즘 소식이 뜸하다며 잘 지내냐고 물어왔다. 나는 회사일 때문에 바쁘다고만 대충 대답하고 끊었다. 그 이상으로 할말이 없었다. 지금의 내 일상에서 회사일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었고, 그렇다고 회사일에 대한 불평 불만을 그 친구한테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놓으면 그 친구의 기분도 안 좋아질 것이 염려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그냥 연락이 끊어졌다. 미안했지만, 다시 연락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바쁘던 시간이 지나고 월말이 되면서는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 즈음 딱 좋은 타이밍에 그 친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한 번 시큰둥하게 연락이 끊겼으면 다시 연락하기 쉽지 않을 법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연락을 준 그 친구가 무척 고마웠던 나는 반갑게 그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때 제대로 답 안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갑자기 그 친구가 대뜸 “소연아, 나는…” 하면서 말을 꺼냈다. 뭐 그때 기분 나빴다느니 하는 말이 나올까봐 조금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한 말은 예상 밖이었다.
소연아, 나는 네가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어.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서 서운했냐고 되물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지금까지 나를 지켜봐오면서 언젠가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난 번에 어떤 마음으로 바쁘다고 연락을 끊었는지도 이해한다고 했다. 내가 스트레스나 답 없는 고민을 굳이 나누려 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말했다. 차라리 그때 그냥 하소연을 하지 그랬냐고. 우리가 안 친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걸 못 받아줄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벽을 치냐고.
나는 마음을 잘 못 여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렵다. 나와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좀 더 밝고 유쾌하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즐겁지 못할 때에는 그런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혼자서 삭이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인간관계를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나를 위해 상대의 시간과 감정을 써달라는 요구도 조심스럽다.
내 그런 면들을 지켜봐 온 그 친구는 말했다. “나는 네가 너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서 걱정돼.” 그 친구는 그렇게까지 인간관계에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아마 내 주위의 그 누구도 내가 감정적인 부분을 요구했을 때 그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나보고 남들에게 다가가라고 한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힘들 때 좀 더 편하게 기대고 의지하라는 의미였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내게 친구가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나는 오히려 달갑게 여기지 않겠냐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굳이 사람들과의 교류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했다. 그냥 편하게, 부담없이,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 없이 생각나면 먼저 손을 내밀어보라고 했다.
그날의 대화를 나는 두고두고 곱씹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인간관계를 좀 더 노력해보자고. 지금까지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들을 기꺼이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고. 무슨 용건이 있어야만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나서, 보고 싶어서, 나에게 있었던 일을 공유하기 위해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2주 동안 대뜸 안부가 궁금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둘이서 만난지 오래 된 한 친구와는 새벽까지 4시간 넘게 그간 쌓아두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또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한 친구는, 마침 내가 전화를 건 시점에 혼자 울고 있었기에 타이밍 좋게 위로해줄 수 있었다. 연락을 먼저 건넨 덕분에 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심리적 거리감이 확 가까워졌다.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이 서로의 시간을 쓰는 행위가 아닐지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 시간들은 알차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후 다시 내게 조언을 해줬던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해준 말 때문에 내가 이런 노력들을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아낌없는 조언 부탁한다는 말에 친구는 멋쩍어하며 웃었다. 그게 이 나이 먹고 할 고민이냐고 농담 섞어 타박하면서. 그러면서 다음에는 우울하거나 힘들 때에도 연락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사람들한테 곁을 좀 내어주라고 했다.
폭풍 같았던 8월이 지나면서, 9월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유독 충만하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감사한 요즘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이더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해주는 이 말을, 나 자신한테도 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