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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25. 2023

2년 간의 러닝 회고: 내가 달리는 이유

두 번째 10k 마라톤 후기

러닝을 시작한 지 어느새 2년이 넘었다. 몇 킬로나 달렸냐고 물으면 머쓱해지고, 잘 달리냐고 물으면 그저 민망하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큼 많이 달리지도, 잘 달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간 꾸준히는 달렸냐고 물으면… 여름에는 덥다고, 겨울에는 춥다고 핑계를 대며 3개월씩 쉬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라서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비록 한 계절씩 쉬어가곤 했음에도, 2년 전에 시작한 러닝을 놓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의 러닝 2주년은 의미가 있다.

처음 러닝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슬슬 나이도 먹어가는데 뭐라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이 러닝을 시작했다고 했다. 오직 신발만 있으면 다른 것 없이도 할 수 있고 달리는 건 사지 멀쩡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시작하기에 참 만만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런데이' 앱을 추천받아 가장 기초 훈련인 30분 달리기 코스를 시작해 보았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꽝인 나는 학창 시절 달리기를 하면 늘 뒤에서 순위를 다투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시작한 런데이 1회 차는, 딱 한 번 찍먹 해보고 바로 그만둘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내게도 만만했다! 1분 달리고 2분 쉬는 건 딱히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20분을 해낸 뒤 성취감이 짜릿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뒤로 런데이가 제시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하나씩 따랐다. 그런데 30분을 쉬지 않고 뛰게 해 준다는 그 8주의 훈련 프로그램을 나는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4주 차가 되면 4분을 쉬지 않고 뛰라고 하는데, 그 4분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번번이 그냥 멈추고 걷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번 좌절하고는 다시 만만하고 편한 1주 차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덥다고, 춥다고, 장마라고, 바쁘다고 몇 주 쉬게 되면 또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고 1주 차로 돌아갔다.


나는 애초에 8주 차 코스를 다 깨겠다는 목표의식이 딱히 없었다. 과하게 힘들지 않을 정도, 적당히 운동한 기분과 성취감만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 런데이 4주 차까지만 한 대여섯 번 반복했고, 런데이 4주 차는 10번도 넘게 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절대 30분을 뛸 수 없을 줄 알았다. 내가 힘든 걸 30분이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런데이 아저씨의 음성을 달달 외울 기세로 똑같은 코스만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고, 같이 러닝을 하던 친구가 말했다. 아마 나는 이미 충분히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사람인데 안 해봐서 모르는 거라고. 뛰면 뛰어질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뛰어보았더니, 정말 30분을 달릴 수 있었다. 처음 30분 달리기를 성공한 순간의 기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호이안 여행을 갔다가 친구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해외에서 러닝 하는 게 로망 중 하나였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챙겨갔던 러닝화가 떠올랐다. 이왕이면 첫 해외러닝을 더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최대한 열심히 뛰었고,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첫 5km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다소 울적한 날이었지만 러닝을 한 덕분에 그때의 풍경과 분위기와 나의 뿌듯함까지 더해져서, 그 순간이 내 러닝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바로 내가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한 순간, 그 뒤로도 나를 계속 뛸 수 있도록 해순간이었다.

내가 러닝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종종 러닝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곤 한다. 살이 빠졌거나 체력이 느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보았냐고 한다. 그러면 사실 나는 가시적인 효과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기도 하고.


그렇지만 매번 러닝을 하고 난 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러닝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몸을 움직였을 때 나오는 호르몬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30분, 혹은 한 시간, 혹은 키로 수를 정해두고 달성했을 때의 그 알량한 성취감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반응 그 이상의 기분 좋음이다. 그런 성취감들이 모여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을 믿는다.


나는 유독 힘들었던 날이면 특히 더 달리고 싶다. 아무리 하루가 힘들고 스트레스받았어도, 달리는 게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해낸 하루는 기분 좋게 마무리된다. 그게 내가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 뛴다.

사실, 요즘은 그런 재미를 조금 잃었던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두 번째 10km 마라톤이었다. 올해 초 아무 준비 없이 무턱대고 도전했던 첫 번째 10km 마라톤 이후, 반년만의 재도전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실력이 조금은 늘었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요즘 몸이 안 좋은 탓인지 정신력이 약해진 탓인지 나는 도중에 포기하고 걷고 말았다. 결국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성적을 얻고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이 회고는 그런 나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이다. 내가 러닝을 좋아하는 이유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느새 목적을 잊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자꾸 기록에 욕심을 내다보니 무리를 하게 되고, 뛰고 나서도 단순히 기분이 좋기보다 자꾸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 마라톤에서 후반부에 지쳐서 포기하게 된 것은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한 탓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오래오래 달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자꾸 까먹는 그 진리를 다시 되새겨본다. 내가 2년 동안 러닝을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부담 없이 매 순간을 재밌을 정도로만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함께 뛰면서, 또 결국 완주해서 성취감을 느끼면서, 그 이후 함께 한 사람들과 회포를 풀면서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접기로 한다.

뒤풀이에서 러닝크루 사람들이 다음에 예정되어 있는 대회들과, 언젠가의 하프마라톤, 풀마라톤을 얘기했다. 나는 10km도 충분히 벅차고 이보다 더 힘든 건 싫기 때문에 하프마라톤도 풀마라톤도 전혀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그 사람들이 반짝반짝해 보여서, 나도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는'하는 은 가능성을 심게 되었다. 지금은 들에 비해서 내가 너무 쪼렙이지만, 한편으로 그건 아직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모쪼록, 지치지 말고 오래도록 즐기자.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계속해나가자. 오늘의 아쉬움이 앞으로도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서 또 다음 대회를 즐겁게 준비할 수 있기를. 그리고 다음번에는 조금만 더 최선을 다해서 좀 더 달콤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내가 사랑하는 러닝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오늘의 나에게 한 마디 건넨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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