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부터 업무 스트레스로 사내 상담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상담 도중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직무가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을 이유로 부서를 옮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내게 어떤 부분이 안 맞는지,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 나는 내가 업무상 받고 있는 스트레스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이 부서에 있을 필요가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로, 노력하는 것에 비해 내가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이 그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시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토론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이후 내내 내가 느끼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진술하면 선생님은 객관적인 근거를 요구하셨다. 가령, 나는 실수가 잦은 편이고 부서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직접적인 피드백을 들은 적이 있어요? 본인이 그냥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에요?”라는 식의 꼬리질문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그렇게 내 진술에 대해 반박이 따라붙는 대화가 반복되자 나는 급도로 피곤해졌고 내가 지금 이 대화를 왜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내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을 본 선생님이 “지금 대화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물어 보셨고, 나는 어디까지 솔직히 말해도 될지 잠깐 망설이다가 “토론하고 있는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1시간의 상담시간이 거의 끝나갈 시점이었다.
그제야 내가 기분 상했음을 깨달으신 선생님은, 본인은 내가 처한 상황을 나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캐물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게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얘기하자고, 다음에도 꼭 와달라고 당부하셨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더 이상 상담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선생님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나도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은 물음표를 들이댔었기 때문이다.
바로 몇 달 전에 똑같은 상황으로 친구와 서로 기분 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반대입장이었다. 나는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이해해야 공감을 하든, 해결책을 주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냥 대충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공감하지 못하면서 공감하는 척 하는 게 나한테는 기만으로 느껴졌다. 친구는 그렇게 캐묻고 사실을 파악하려는 내 태도가 피곤하다고 했다. 우리는 분명 둘 다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단지 개와 고양이처럼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 대한 표현 방식이 정반대일 뿐이었다. 이번에 내가 반대의 상황, 그 친구의 상황을 겪게 되자, 그제야 그 친구가 말했던 피곤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선생님 역시 나를 이해하고 돕고 싶었던 것임을 너무 잘 알았다.
이번 주에 다시 상담소를 방문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그날 상담 때 느꼈던 것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셨고, 나는 선생님의 의도를 잘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의 내 상황에 상담선생님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고, 단지 내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하신 것을 이해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내 생각의 흐름이 객관성을 잃고 나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뻗어 있을까봐, 균형을 잡아주려고 계속 반박하신 것도 안다고 했다. 단지 나로서는 단순히 내가 느낀 것을 털어놓는 게 아니라 내 감정에 대한 입증 책임까지 요구받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상담을 통해 어떤 효과를 얻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목표하지 않은 것이다. 내 상황은 내가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지 선생님이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애초에 상담은 스트레스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기에 나는 별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으로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반박해서 없애는 게 이 상담의 목적이자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다시 선생님과 상담의 방향에 대해 얘기해보았고, 나는 그냥 하소연을 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얘기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어차피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계속 꼬리질문을 하셨지만 선생님은 결코 내가 처한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고 해결책을 주실 수 없다. 아마 그동안의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절대 이해 못한 채 어쩌면 이해했다는 오만을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이해를 뒤로 하고 표면적인 위로와 공감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 이제서야 마음에 박힌다.
예전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라는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히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이번에 나의 정답이 조금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많이 바뀌어 나갈 것이다. 내 철학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는 것임을 알고 항상 독선적인 태도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직 내가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닫는 미성숙한 사람이므로 좀 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