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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Jan 16. 2024

당근마켓을 하는 사람

편협하고 게으른 어른의 회고

언젠가를 기약하며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는 물건이 있다면, 내게는 바로 기타이다. 언젠가 쳐야지, 하면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것. 그러다 나는 애꿎은 기타를 탓했다. 내가 예전에 쓰던 유형의 기타가 아니라서, 넥이 두껍고 무거워서 도저히 손이 안 가는 거야! 그래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충동적으로 당근마켓을 통해 새 기타를 사고, 헌 기타를 팔아버리는 약속을 각각 잡았다.


당근마켓을 이용하면서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직접 대면하였을 때 예상 밖의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기타를 나에게 팔 사람을 만났는데,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때는 딱딱한 분일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뵈니 앰프도 들어주시고, 묻지도 않았는데 깎아주시는 등 굉장히 매너 있는 분이셨다. 아주 짧은 만남이지만 오전부터 좋은 매물을 쿨거래하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는 이제 내 낡은 기타를 파는 약속이 예정되어 있었다. 휴일 출근을 해야 했던지라, 일하는 도중에 잠깐 나와서 기타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매자에게 회사 주차장 근처로 와달라고 했고, 구매자도 별말 없이 시간 맞춰 오겠다고 대답했다. 별생각 없이 일하던 중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기타를 챙겨 나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하도 안 오길래 연락해 보니, 그분이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착각해서 회사 정반대 편으로 가셨다고 했다. 거기서 어떻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냐는 질문에, 나는 "그냥 네비 찍고 오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금방 올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20분을 더 기다려도 차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대체 어떤 경로로 오고 있는 것인가 나는 하염없이 도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4명이 서있었고, 당연히 차는 없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냐고 물었더니 걸어서 왔다고 대답했다.


구매자와 우리 회사까지의 거리는 차로는 30분이 채 안 걸리지만,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당연히 무거운 기타와 앰프를 가지러 그 거리를 오는 사람은 차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면 대중교통으로는 엄두도 안 냈을거기 때문이다. 그제야 구매자가 굉장히 헐값에 올린 내 매물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의 상태나 가격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던 게 생각났다. 자꾸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 그냥 거래를 파기해 버릴까 생각했었다. 학생이었구나, 그래서 좀 더 꼼꼼하고 신중하게 거래를 했구나, 용돈으로 사는 걸까, 그런 생각에 조금 마음이 짠하면서 미안했다. 진작 알았으면 적어도 지하철역까지는 가서 만날걸...!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우리의 대화 그 어디에서도 그분은 운전해서 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당연히 운전해서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짐작한 것은 내가 타인에게 나의 생활방식을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뚜벅이였을 때는 기타를 사기 위해 1시간 거리를 지하철 타고 갔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는 차의 존재가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그 가능성조차 잊은 것이다. 나의 편협한 사고가 충격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은 동네 근처에서, 새 상품보다 저렴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애용하기 좋은 플랫폼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직장인이기 때문에 당근마켓 이용자들도 대부분 나 같은 성인이자 직장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래를 하려다 보면 억지로 깎으려 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속으로 굳이 그걸 깎냐,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굳이 그걸 깎아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내가 한동안 내 위주로만 생각하면서 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 먼 거리를 왔냐며 호들갑 떠는 나를 보고도 그 남학생은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별로 안 힘들었다고 머쓱해했다. 지금 이 회고를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고작 한 시간 반 거리도 대중교통을 안 타려고 드는 게으른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싶었을 것 같다. 오늘은 날씨가 별로 안 추워서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날이 추웠다면 굳이 외진 회사까지 이들을 부른 나 자신이 더 못나게 느껴졌을거기 때문이다. 나는 교통비 삼으라며 얼마 깎아주었고, 당연히 계좌를 부르려던 내게 그 친구는 꼬깃꼬깃한 현금을 내밀었다. 조심히 가라며 돌아서서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최고예요' 당근 이모티콘이 왔다. 이기적이고 게으른 어른에게 '최고예요'라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당근마켓을 자주 하지 않아서인가. 당근마켓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기 때문인가. 가끔 이렇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의 만남들은 다 인상 깊게 남을 것 같다. 짧은 만남이라도 누군가에게도 나와의 만남이 기분 좋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다음에는 돈이 엮인 판매자와 구매자 그 역할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을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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