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는 자유가 아니었다

서울 독립이라는 말이 무너진 순간

by 조이풀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는 ‘자유’를 떠올렸다. 간섭도 잔소리도 없는 공간. 내가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 작은 원룸은 나에게 독립의 상징처럼 보였다. 20㎡ 남짓한 통짜 구조. 거실도, 방도 구분되지 않은 공간. 대로변에 위치했고, 교통이 좋았고, 회사까지 도보로 갈 수 있었다.


“초보 자취생에게는 딱이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계약했다. 처음 몇 달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작지만 포근했고, 무엇보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자유는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소유감에서 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집은 그대로였는데, 내가 달라졌다. 2년 차가 되던 해, 집주인은 월세를 법정 한도만큼 올렸다. 관리비는 규제가 없다며 추가 인상을 통보했다. 재계약서에 찍힌 숫자는 이전보다 딱 10% 높아져 있었다. 집을 알아볼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을 찍었다.


그날 이후, 이 공간은 ‘자유’가 아니라 ‘고정비’가 되었다.

올라간 월세는 숫자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서울에서의 독립은 자유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비용을 감당하는 과정이었다. 고정비가 늘자 지출을 줄였다. 커피를 줄이고, 외식을 줄이고, 작은 소비들을 접었다.


퇴근 후 돌아온 방은 예전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뒤돌면 벽, 또 벽.
처음엔 아늑하다고 느꼈던 구조가 점점 숨을 막히게 했다. 서울의 원룸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 아무리 꾸며도, 아무리 정리해도, 근본적인 공간의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나는 한때 방을 꾸며보려 했다. 가구를 바꾸고, 소품을 들이고,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공간이 변하지 않으면, 감정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더 돈 쓰기 전에 그만하자.” 그 순간부터 집은 ‘꾸미는 공간’이 아니라 ‘버티는 공간’이 되었다. 침대는 잠을 위한 기능만 남았고, 주말은 회복이 아니라 공백이 되었다. 멍하니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자취는 자유가 아니라 관리였다.


청소를 하루라도 미루면 먼지가 바로 쌓였다. 누군가 대신해 주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은 해방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서울 독립은 낭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공간이 점점 나의 삶을 닮아간다고 느꼈다. 작고, 제한적이고, 확장성이 없는 구조. 처음에는 이 방이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 공간은 질문이 되었다.


“나는 왜 여기에서 이렇게 숨을 참고 살고 있지?”

공간이 답답해질 때, 삶도 답답해진다.


자취는 자유도, 휴식도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도 다시 몸을 움직여야 유지되는 상태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무너지는 구조. 나는 서울에 독립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은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데 3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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