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휴식의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기회를 찾아 떠났지만, 나를 살린 것은 가족이었다

by 조이풀

서울로 독립하며 이직을 했다. 지방을 떠난 이유는 분명했다. 건설업계의 불황은 설계에도 그대로 번졌다. 프로젝트는 줄었고, 경험은 한정적이었다. 나는 더 다양한 건물을 설계해보고 싶었다. 더 큰 판에서 부딪혀보고 싶었다.


지방과 달리 서울은 기회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 올라왔다. 기회를 얻기 위해, 나는 배경을 내려놓았다. 독립은 자유일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 생활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당연함’이었다.


퇴근 후 누군가 차려놓은 밥을 먹는 일, 거실에서 아무 말 없이 함께 TV를 보는 시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안정감. 그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이 그리웠다. 정확히는, 가족과 함께 있던 ‘공기’가 그리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내향적이다.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다. 각자의 방, 각자의 시간. 조용한 집이었다.
하지만 함께 모이는 날이 되면 달라진다. 식탁 위에 음식이 하나둘 놓이고, 수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색하던 공기가 풀린다. 엄마의 음식이 중심에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우리는 조금씩 말을 꺼낸다.


우리는 말이 많지 않지만, 함께 먹는 시간만큼은 길다. 자취를 하며 가장 자주 떠오르는 건 거창한 가족애가 아니다. 엄마의 밥이다. 특별하지 않은 반찬, 익숙한 국 냄새, 식탁 위의 평범함.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고 자극적인데, 그 밥은 느리고 단순했다. 그래서 더 그리웠다.


서울에서의 일상은 집과 회사의 반복이다. 요즘은 더 심하다. 일정은 촘촘하고, 퇴근은 늦고,자취방은 점점 ‘생활 공간’이 아니라 ‘수면 공간’이 되어간다. 침대에 몸을 던지면 하루가 끝난다. 아침이 오면 다시 출근한다.


서울은 나를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나를 소모시킨다. 그렇게 살다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본가에 내려간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나를 가장 많이 움직이게 한다. 본가에서는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웃는다.
그런데도 덜 지친다. 서울에서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피곤한데 본가에서는 하루 종일 움직여도 덜 피곤하다.
나를 충전시키는 곳은, 내가 떠나온 곳이었다.


서울은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배움도, 경험도, 속도도 주었다. 하지만 버티는 힘은 다른 곳에서 왔다. 가족이었다.
독립은 자유가 아니라 거리였다. 그 거리는 나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서울은 넓다.
기회도 많다.
사람도 많다.
그런데 가끔, 마음은 더 좁아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알게 되었다.
내가 혼자 서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배경 위에 서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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