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평가에 나를 걸어두지 않기로 했다.
연초부터 일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연말의 연봉협상은 이미 어긋난 채로 지나갔고, 이 연차에 기대했던 승진도, 연봉 인상도 없었다. 업계는 불황이라고 말한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모두가 멈춘 것은 아니다. 오를 사람은 오른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기대’를 내려놓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희망은 품지 않겠다고, 괜히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기대를 접는다고 해서 마음이 바로 고요해지지는 않았다. 기대 대신 남은 것이 있었다. ‘인정’이었다.
승진이 아니어도 좋았다. 큰 폭의 연봉 인상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쌓아온 시간과 노력, 결과만큼은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봐주기를 바랐다.
기대는 미래를 향하지만, 인정은 지금의 나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다.
돌이켜보니 인정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기대였다. 타인의 평가를 통해 내 가치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예민해졌다. 회의 자리에서의 작은 말 한마디, 표정의 변화, 결정 과정에서의 미묘한 온도차까지. 나는 의미를 덧붙였고, 해석을 쌓았고, 스스로를 비교했다.
인정에 매달릴수록, 나는 나를 타인의 손에 맡기고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피로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판단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고, 한 번의 평가에 따라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상태. 나는 점점 소모되고 있었다. 체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안 된다”라는 식의 자기 방어는 또 다른 패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계속 예민해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무뎌짐’이었다. 무관심이나 냉소가 아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 모든 평가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
모든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침묵이 부정인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나를 회사의 결과표 위에만 올려두지 않기로 했다.
회사 밖의 나,
기록하는 나,
쌓아가는 나,
조용히 준비하는 나도 함께 보려고 한다.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가가 없다고 해서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기대가 나를 밀어붙인다면, 기준은 나를 지켜낸다.
나는 천천히 날을 세웠던 마음을 갈아내고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날카로워졌던 부분을 둥글게 만들고 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도망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대를 없애려 애쓰는 대신, 기대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회사에 대한 기대보다, 타인의 인정보다,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