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부정하면 현재도 흔들린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장 폴 사르트르 -
한때는 멋있는 문장이라고만 생각했다. 같은 문장이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지금의 나는 결국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지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회사도, 연차도, 속도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끔은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잘못된 방향 같기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늘 비슷한 문장이 맴돌았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의지와 겸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후회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과거의 나를 자주 소환해 따져 물었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왜 더 과감하지 않았는지, 왜 더 치열하지 않았는지. 기대가 컸던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은근히 이런 전제를 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더 잘될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현재가 못마땅했다. 지금은 잠시 잘못 들어선 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를 계속 부정하는 사람은 현재도 편할 수 없다. 과거의 내가 틀렸다면, 지금의 나 역시 틀린 자리 위에 서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를 부정하면 현재도 안전하지 않다.
그 부정은 조용히 일상으로 번졌다. 기분은 쉽게 가라앉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누군가의 말이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지던 날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화살은 사실 나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과거를 미워하니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문장을 하나 바꿔보려고 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대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라고.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때의 나는 그 나름대로 고민했고, 나름대로 용기를 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지금을 통째로 부정하는 대신, 조금 덜 몰아붙이는 쪽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B와 D 사이의 C는 매일 반복되는 선택들의 집합이다.
오늘은 나를 심문하지 않는 선택을 해본다.
어쩌면 그 작은 선택이 다음 선택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