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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와 '두 바다 사이'

by 페쉬플랏

16.JUL 2019 -17.JUL 2019

이틀 동안 보르도에서의 시간이, 아니 그 영수증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친구에게서 영수증 받기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틀째가 되자 한결 익숙해진 우리는 시간 맞춰 맞는 버스정류장을 찾아갔고, 수업 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까지 누렸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점심시간 동안 식당에서 정식으로 식사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 키쉬, 팔라펠 따위로 점심을 해결했다. 빠르고, 맛있고, 친절했다. 여섯시 쯤 수업을 마치면 미처 지지 않은 해가 쏘아대는 땡볕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셋째 날 수업을 마친 후에는 시험이 있다. WSET LEVEL 2 자격증을 얻기 위한 시험이다. 첫째 날 저녁에는 고된 테이스팅과 부른 배로 노곤해져 그대로 잠들었기 때문에, 따로 복습할 시간은 둘째 날 저녁뿐이었다. 남은 트러플 파스타와 연어, 체리, 샐러드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야식을 먹으면서 함께 공부했다. 스무 살에 만난 대학교 동기와, 졸업한 지 십 년쯤 흐른 뒤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고 있으니 좀 새삼스럽다.


프랑스 지역명이나 메인 품종은 입에도 붙고 특징도 기억에 잘 남는데, 'Other Black Grape Varieties' 나 ''Other White Grape Varieties'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품종들이 눈을 팽팽 돌게 했다. 당도를 기준으로 나누는 독일 와인 등급은 읽을 줄을 몰라서 앞 세 글자 씩만 순서대로 외웠다. 지역명 중에서는 호주/뉴질랜드 와인 산지를 구분하는 것이 힘들었다. '-밸리', '-베이'가 너무 많아서 전부 그게 그거 같고.

왼쪽부터 토니 포트, LBV 포트, 피노 셰리

시험날이 밝았다.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스위트 와인, 셰리와 포트, 스피릿츠까지 배우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시험을 치렀다. 샴페인부터는 복습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LV2까지는 테이스팅이 없고 전부 객관식이지만, 교재에서 푼 연습문제에 비해 난도가 꽤 높았다. 정확하게 똑 떨어지지 않고 애매한 문제들은 소거법으로 풀었다. 모두 시험지를 제출한 뒤 마띠아스와 답을 맞혀보니 탈락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반만 맞으면 되는 시험이다.

유난스러웠던 폭염은 한풀 꺾인 뒤였지만, 그래도 꽤 더운 날이었다. 학원 근처 카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친구는 탄산수를, 나는 수업시간에 들어본 '엉트르 되 메르(Entre deux Mers)'를 한 잔 주문했다. '두 바다 사이'라는 뜻이다. 보르도가 속한 지롱드 주 북쪽으로 흘러드는 지롱드 강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중 보르도를 관통하는 것이 갸론Garonne, 다른 하나가 도르도뉴Dordogne 이다.


흔히들 아는 메독 지역은 갈라지기 전의 지롱드강 왼쪽, 그러니까 보르도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생테밀리옹은 도르도뉴 강 오른쪽에 있다. 강 왼쪽, 강 오른쪽 와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기준 삼는 강이 다른 것이다. 엉트르 되 메르는 갸론 강과 도르도뉴 강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일컫는다. 두 강줄기 사이에 위치한 것을 두고 '두 바다 사이'라고 표현한 것. 지도 보기를 어려워하는 나지만 지명의 유래나 관심사와 얽어 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저녁은 타이 음식점에서 먹었다. 메뉴는 팟타이와 그린 커리, 그리고 싱하였다. 오랜만에 쌀밥을 곁들이니 좋고,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끝나고 보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다음날엔 메독 지역 투어가 예약되어 있어 일찍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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