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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Dec 03. 2020

프랑스, 와인 말고 뭐 마셔?

사진 출처: Unsplash @k8townsend


프랑스 유학 기간에 가장 많이 마신 술은 단연 와인이었다. 동네 마트에만 가도 한쪽 벽면이 빼곡히 와인으로 채워져 있고, 카페에도 식당에도 항상 여러 종의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 그렇다고 프랑스인들이 늘 와인만 달고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식사와 곁들이는 건 대부분 와인이지만 식사 전후로는 생각보다 다양한 술들이 테이블에 오른다. 프랑스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와인 이외의 술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사진 출처: Unsplash @benceboros


1. 카페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맥주는 흔한 술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알코올 음료를 금지하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 가도 맥주를 쉽게 마실 수 있으니까. 실제로 전 세계에서 물과 차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가 바로 맥주라고 한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와인의 압도적인 위세 때문인지 체코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프랑스 거주자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2015년 30리터에서 2018년 32리터로 늘어났다. 프랑스 국립 통계 경제 연구소(Insee)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아페리티프로 가장 선호하는 음료 역시 맥주다. 통계까지 갈 필요도 없다. 오후 5~6시 즈음의 카페테라스에서는 맥주잔을 사이에 둔 채 대화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럼 프랑스인들은 어떤 맥주를 마실까? 브랜드인덱스(BrandIndex)의 인지도 조사에 따르면 하이네켄, 레페, 1664, 그리고 데스페라도 등의 브랜드가 꾸준히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에서 2020년까지, 4년 새에 프랑스 내 수제 맥주 판매량은 두 배로 늘어났고, 그 판매 금액이 전체 맥주 판매 금액의 11%를 차지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가볍게 한잔하러 카페에 들렀다면 메뉴판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카페는 2~3종류의 생맥주를 구비해 두고 있고, 자신이 마시고 싶은 스타일과 용량을 말하면 알아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없을 확률이 0%에 가까운 ‘비에르 블롱드(Bière blonde)’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황금빛 라거를, 비에르 블랑슈(Bière blanche)는 보다 밝은 빛을 띠는 밀맥주를 지칭하며 용량은 일반적으로 팽트(Pinte=500ml) 혹은 드미(Demie=250ml)로 나뉜다.


맥주와 레모네이드를 미리 섞어 병이나 캔으로 판매하는 파나셰 완제품도 시중에 나와 있다. / 사진 출처: ‘Panach’ 광고 캡처


술 마시는 기분은 내고 싶은데 취하기는 싫다거나 맥주의 쌉쌀한 뒷맛이 취향에 맞지 않는 이에게는 상큼한 과일 맛이 첨가된 맥주를 추천한다. 특히 스페인 여행 중 ‘클라라(Clara)’의 매력에 푹 빠졌던 사람이라면 프랑스에서는 ‘파나셰(Panaché)를 주문하면 된다. 맥주에 레모네이드를 섞어 가볍고 상쾌한 맛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두 맥주 칵테일은 꼭 닮았으니까. 매혹적인 붉은색 음료를 마시며 시각적 즐거움까지 누리고 싶다면, 파나셰에 석류 시럽을 추가한 ‘모나코(Monaco)’가 제격이다.


사진 출처: Flickr @clyclonebill


2. 압생트의 후예,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식전주가 되다


전 세계에서 다 마시는 거 말고 좀 특이한 건 없느냐고? 물론 있다. 남프랑스 애주가들이 차가운 물에 섞어 마시는 파스티스(Pastis)는 그 자체로는 투명하지만 물과 만나는 순간 살짝 노란색을 띤 우윳빛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밀키스 같은 외양만 보고 맛도 부드럽고 달콤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스타 아니스(Star anise: 팔각), 감초, 다양한 허브를 재료로 하는 이 술은 특유의 톡 쏘는 향이 있는 데다 도수도 높아서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파스티스가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흥미롭게도 압생트 덕분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친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던, 그러나 반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게 하고 시인 베를렌으로 하여금 랭보를 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는 그 압생트 말이다. 압생트로 인한 문제가 끊이지 않자 프랑스 정부는 1915년 압생트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초록색 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사랑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2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부도 압생트의 재료 중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향쑥(Warmwood)을 뺀 압생트 스타일의 술 판매를 인가했다.


마르세이유의 사업가 폴 리카르(Paul Ricard)가 아니스 향의 파스티스를 들고나온 것도 이즈음으로, 처음에는 높은 알코올 도수가 문제시되었지만 끊임없는 로비 끝에 1932년 관련 법이 바뀌면서 정식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파스티스 브랜드도 리카르이며, 압생트를 만들다 파스티스 생산에 뛰어든 페르노(Pernod) 역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두 브랜드는 현재 한 회사에서 생산 중이다.)


사진 출처: Histoire Normandie


3. 크레프의 영원한 짝꿍


남쪽의 술을 구경했으니 이제 북쪽으로 올라가 볼까?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의 남동부와 마주 보고 있는 노르망디,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서쪽에 자리한 브르타뉴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드는 시드르(Cidre)의 주 생산지다. 물론 사과주(영어로 Cider)를 프랑스에서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영국,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사과주를 생산하고, 그 소비량에 있어서는 영국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프랑스 시드르만의 특색이 있으니 바로 100% 사과즙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점. 사과즙 함유량이 35% 이상이면 사이다라 부를 수 있는 영국과 다른 부분이다.


시드르는 당도와 알코올 도수에 따라 그 종류가 나뉜다. 가장 달콤한 시드르 두(doux)는 리터 당 당분 함량이 35g 이상, 알코올 3도 이하여야 하며, 드미 섹(Demi-sec)은 28g에서 42g 사이의 당분, 4도에서 5도 사이의 알코올을 함유한다. 브뤼(Brut)의 경우 당분 함량이 28g 이하, 알코올은 4도에서 5.5도 사이다. 인위적인 효모 첨가 없이 사과가 본래 지닌 효모로만 발효하는 트라디시오넬(Traditionnel)은 6도 이상에 탄산이 적고 시큼한 것이 특징이다.


시드르는 주로 ‘볼레(Bolée)라 불리는 커다란 수프 컵 모양의 잔에 마신다. / 사진 출처: Flicker @Marco


시드르를 음식과 함께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브르타뉴의 또 다른 명물, 크레프(Crêpe)를 파는 전문 식당인 크레프리를 찾아가자. 메밀가루 반죽을 얇게 부쳐 햄, 치즈, 달걀 등을 올려내는 갈레트(Galette)에는 시드르 드미 섹을, 하얀 반죽 위에 누텔라와 바나나 등을 더한 달콤한 크레프에는 시드르 두를 곁들이면 실패가 없을 것이다.


노르망디의 몇몇 지역에서는 시드르를 증류∙숙성해 칼바도스(Calvados)라는 브랜디로 만든다. 사용되는 사과 품종부터 증류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그 풍미도 제각각. 동프롱(Domfront) 지역에서는 배즙을 30% 섞어 만들기도 한다. 식후주로 커피와 함께 마시는 경우가 흔하며 고기 요리나 디저트의 풍미를 살리는 재료로도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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