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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11. 2021

갑자기 3억 생기면 뭐 할 거예요?

오늘의 단어: 일

 갑자기 3억 생기면 뭐 할 거예요? 롤러코스터 같은 암호화폐 시장의 출렁임 때문인지 종종 동료들과 이런 실없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우리의 답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곱창 쌀국숫집 분점을 내고 싶다고 하고 다른 이는 전세를 마련해 월세에서 해방되겠다고 한다. 지방에 부동산을 하나 사서 월세를 받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멋진 대답으로는 '그냥 놀고먹는 데 쓰겠다'가 뽑혔다.


 3억은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을 바꿀 만큼 결정적인 액수는 아니다. 3억으로는 서울에 집을 사기 어렵고, 노동에서 해방될 수도 없으니까. 3억이 30억이 되면 대답도 조금 달라진다. 30억이라면 집을 사고도 내 한 몸 먹여 살릴 돈이 남을 것이다. 우리 중에는 그런 날이 와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반, 당장에 퇴사하겠다는 사람이 반이었다. 나는 전자에 속했는데 유달리 성실하거나 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어서는 아니고, 내버려 두면 정말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웅크리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오가다가 정신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으로 30억 번 여성, 휴대폰 손에 쥔 채 자택 침대에서 발견돼" 같은 기사가 날지도 모르지.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해낸 건 언제나 매일 갈 곳이 있을 때였다. 텅 빈 시간을 자유롭게 채우는 것보다, 바빠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의 게이지가 꽉 차 있을 때 자투리 시간을 쪼개는 게 내게는 훨씬 쉬운 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재미로 사둔 귀여운 액수의 주식이 10%만 올라도 재빨리 팔아치우는 마당에, 내가 암호화폐로 떼돈을 벌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일에는 앞으로도 '무엇을 이루'고 '적절한 대가를 받'는다는 두 가지 목적이 공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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