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쉬플랏 Aug 10. 2021

내 마음만큼 지옥일 아빠의 마음을 상상한다

오늘의 단어: 여름밤

 

"아빠가 물에 들어갔어. 정말 왜 그러나 몰라."


 어느 해 여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가족끼리였는지 친척들과 함께 떠났었는지도. 확실한 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아빠가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닷물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자려고 숙소 방 안에 누워있던 나는 술 취한 아빠가 밤바다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검은 잉크 같은 물결이 아빠의 줄무늬 티셔츠를 삼키는 모습은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상상 속에서 아빠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은 이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아마 예닐곱 살이었을 나는 걱정으로 귀가 먹먹해졌다.


 그때부터 아빠는 규칙과 안전 수칙을 자주 위반하는 사람이었다. 들어가지 말라는 잔디밭으로 지나다녔고 동상이나 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집안에 쌓인 박스가 보기 싫다며 비 오는 날에도 자꾸 재활용 쓰레기를 밖에 내놨다. 엄마와 나는 그런 아빠와 자주 싸웠지만 언젠가부턴 체념하고 아빠를 내버려 두었다. 룰 브레이커 아빠는 자기가 하는 일에 아무도 딴죽을 걸면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워두었으니까.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탈 때는 명백히 잘못된 길로 들어서더라도 알려주지 않는 편이 낫다. 가장을 믿지 못한다, 알아서 하는데 자꾸 명령을 한다며 목소리가 커질 테니까. 운이 나쁜 날이라면 공부가 짧은 나를 너희가 무시해서 그렇다는 말까지 듣고 억울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될 테니까.


 아내와 자식에게도 판단력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들의 무시와 경멸을 쉽게 믿으며 살아가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 마음만큼 지옥일 아빠의 마음을 가끔 상상한다. 그리고 그 여름밤의 나처럼 연약했을, 그러나 바닷가에 데려가 줄 부모가 없었을 아빠의 유년과 사춘기를. 부모를 증오하는 자식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그러니까 결심은 작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