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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12. 2021

이상형의 함정

오늘의 단어: 이상형

 상대와 연인이 될 수 있을지 아닐지는 만난 지 3초 안에 판가름 난다고 하던가. 내 이상형은 확고하고도 좀 진부한 구석이 있어서,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과의 연애를 상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인상에 쌍꺼풀 없는 눈. 여유로운 태도와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 어딘가 나른한 느낌까지 있다면 백점, 아니 만점이다.


 함정은 거기에 있다.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은 싫어하는 게 많기 마련이고 여유로운 태도는 절박할 게 없을 때 가능하다. 한결같이 다정하고 헌신적일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다. 나 역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많은 사람이기에 상대의 좋음과 나의 좋음이 커다란 교집합을 그리는 일은 드물다. 운 좋게 찰떡같이 맞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날지라도 기뻐하긴 이르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는 차집합은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다가오니까.


 정말 만나야 할 사람들끼리 만났다 싶은 커플을 종종 본다. 그렇게 보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야 두 사람 외에 누가 다 알겠냐마는, 적어도 제삼자의 눈에는 유난히 닮은 구석이 많고 서로의 결핍을 잘 채워주는 사람들. 누가 뭐래도 당신의 나의, 내가 당신의 편이라는 사실만큼은 의심치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때로는 그런 상대를 찾지 못한 내가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상형이 다 뭐냐고, 받는 사랑의 크기가 주는 사랑의 크기보다 클 때 정말 행복해지는 거라고, 알고 보면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자라면서 반복적으로 들어온 이야기들이 이제는 내 목소리가 되어 울릴 때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전부 좋다 하는 짙은 쌍꺼풀의 무던한 사람을 만날 거냐 하면 글쎄. 적어도 당분간은 좋아지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려 시간을 쏟기보다는 내가 나를 조금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애쓰며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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