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쉬플랏 Aug 13. 2021

동네의 열한 해

오늘의 단어: 동네

 지금의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아직 입주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신도시의 새 동네. 매일 아침 아홉 시까지 서울 중심의 학교로 출근해야 했는데, 버스는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드문드문 왔고 러시아워의 경부고속도로를 뚫고 운전해서 가자면 새벽 다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집 주변에는 치킨집이나 빵집은커녕 편의점 하나 없었고, 대체로 황량한 공사판이었다. 대학원 생활도 조교 일도 녹록지 않았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태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공부와 일로 지나치게 바빴고 그러면서도 술자리가 잦았다. 깨어있는 내내 침대로 돌아갈 시간만 기다렸다. 서울에서, 있어야 할 곳에서 밀려난 기분이었다. 


 11년이 흐른 지금 동네에는 나무가 제법 울창하다. 이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도, 치킨집과 피자집도 있고 예쁜 카페도 하나 생겼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이 짧지는 않지만 앱을 이용하면 지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의 자전거 벨소리가 종종 들리고 담장을 넘나드는 길고양이들은 모두 통통하다. 가끔 이웃과 초당 옥수수나 포도를 나누어 먹는다. 학교를 떠나, 작지만 즐거운 일을 하며 평생 할 것 같지 않던 자기계발에 몰두 중이다. 엑셀이나 영어를 배우는 건 아니고, 좋아하지만 왠지 잘 못할 것 같아서 미뤄두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고 있다. 


 주말이면 소파에 다리를 뻗고 앉아 책을 읽는다. 읽다가 생각한다. 어떤 것들은 시간과 함께 저절로 나아지기도 한다고. 

작가의 이전글 이상형의 함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