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불리는 것들
흔한 노랫말에는 이유가 있다고. 경계를 풀고자 하면 그 영역은 무한한 것이 바로 사랑이기에, 그들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주며 나는 꼭 동그란 세상에 살아갈 거라고 말했다. 당찬 사랑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극도로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시기에는 꼭 내 키보다 낮은 사랑에 갇혀 허우적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랑 하나에만 쏟는 마음이 너무 크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용기도 한순간 자취를 감춰버린다.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마음의 우리에서 넘쳐 담을 넘을 때면, 겨우 뜬 실눈에 의지해 내가 사랑한 것들의 끄트머리를 쥐고서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는 게 일상이 된다. 내가 디딘 동그란 세상을 의식하지 못한 채, 실눈 틈으로 보이는 코앞의 희미한 빛만을 좇다 지쳐 모든 걸 놓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온 사랑이 무너진다.
세상의 진리라 여기는 것들이 내 사랑을 가로막는다. 경험으로 치환하면 고통의 순간도 훌륭한 과정으로 변태하듯, 무조건적인 경험주의는 반대로 사람에 따른 변동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의 경험치에 무릎꿇고 사죄라도 해서 나에게 조금만 더 열어달라 호소하고 싶어진다. 다른 이들과 내린 결론 앞에서 나는 가장 큰 좌절을 겪는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다를 거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절대 닿지 않을 누구보다 자신없는 목소리로 속삭이다 다시금 무너진 게 바로 지금. 오늘의 사랑이다.
나에게 허용되지 않는 선밖에서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초월한 내 모습을 과시하는데 유일한 에너지를 쓴다. SNS에 사랑 가득한 글을 올려도 충만해지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붙잡고 있던 전화기도 차갑게 방치된다. 어디에도 손내밀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고양이 두 마리와 7평 남짓 방에 갇혀 한번 겨우 두드려보고는, 또 다시 방치된다. 이렇게 당신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쓰는 것만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끄적인다. 만신창이 사랑에 희미한 기대감을 가진 채, 초점 잃은 눈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새해를 맞아 매일 쓰기로 마음먹은 일기장에서는 부쩍 불쾌한 단어들이 늘었다. 1월 한달 만에 일기쓰는 마음은 급속도로 메말라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힘들 때 여기서 이겨낼 힘을 찾는 거야."
"이 시기를 생각해. 사랑을 쉽게 시작하지마."
내일 2월이면 달라질까. 이 사랑을 포기하면 달라질까. 내 동그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여기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