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 말러 피아노 사중주
오늘은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스며들어 있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와 그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는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2001)>, <가라, 아이야, 가라 (Gone, Baby, Gone, 1998)>', '문라이트 마일 (Moonlight Mile, 2010)>' 등의 범죄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 (Dennis Lehane, 1965-)'의 대표 작품인 '<살인자들의 섬 (Shutter Island)'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등의 영화로 유명한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Charles Scorsese, 1942-)'가 연출을 맡아 201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Wilhelm Dicaprio, 1974-)'와 '마크 러팔로 (Mark Ruffalo, 1967-)'와 같은 최고의 배우들의 연기를 앞세워 큰 흥행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입니다.
영화는 1954년을 배경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66명의 중범죄자를 수감하는 감옥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사라진 여성 수감자 '레이첼 솔란도'를 찾기 위해 두 사람의 연방 수사관 '테디 대니얼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척 아울 (마크 러팔로 분)'이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선착장도 한 곳뿐이라 탈출이 절대 불가능한 셔터 아일랜드에서 사라진 수감자를 찾는 수사를 맡은 테디, 사실 그가 셔터 아일랜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 (Andrew Laeddis)'가 이 섬에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자를 대면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거대한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함을 느낀 테리, '전두엽 절제술 (경안와뇌엽절리술, Transorbital lobotomy, 19세기 말 유행하기 시작해 1970년대까지 유행하였던 수술, 중증 정신병 환자를 얌전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로 인하여 노벨의학상까지 받았으나,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으로 현재는 거의 금지된 수술)'이 몰래 불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추적하던 중 셔터 아일랜드의 소장 '존 코리' 박사를 마주치고 그에게서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됩니다.
원래 테디의 본명은 '에드워드 대니얼스 (Edward Daniels)'로 자신의 아내를 죽인 방화범 '앤드루 레이디스'는 애드워드 대니얼스 이름의 '아나그램 (Anagram, 철자를 분해해서 다른 단어로 만드는 게임 등)'입니다. 에드워드의 부인은 정신이상으로 세 아이들을 모두 집 앞 호수에 익사시켰으며,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에드워드에게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합니다.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찬 에드워드는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죠.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포로들을 몰살시킨 경력이 있던 에드워드는 아내의 살인을 기폭제로 과격하고 흉폭한 정신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에드워드의 주치의였던 '척'은 존 코리 박사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보다는 약물과 심리 치료를 지지하던 의사들이었기에, 전두엽 절제술을 행하기 전 마지막 수단으로 에드워드의 환상을 실현시키는 심리극을 벌이게 됩니다.
환상에 깨어난 에드워드는 '괴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선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척에게 남기며 뇌수술을 받으러 끌려가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매우 음습한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클래식 작품이 바로 오스트리아 유대인 작곡가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입니다.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는 후기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노 연주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말러의 작품들은 나치가 성행하던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내에서 공연이 금지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45년 종전 이후 그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10개의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는 '말러리안 (Mahlerian)'이라는 매니아층을 만들 정도로 음악사 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 (Piano Quartet in a minor)'는 말러가 작곡한 실내악 작품들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실내악 곡입니다. 말러는 1875년부터 1878년까지 비엔나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하였는데, 그가 16세였던 1876년 초연된 이 곡은 말러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초연 무대를 올린 청소년기 작품이기도 합니다.
'Nicht zu schnell (빠르지 않게)'란 1악장만 작곡되고 나머지 악장은 스케치만 남아있는 미완성 작품인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는 현재 단악장 곡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서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는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 테디와 척이 코리 박사의 사무실에 방문하였을 때 사무실에 울려퍼지고 있는 음악으로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이 때 척은 '음악이 좋네요. 브람스인가요?'라고 물었고, 이에 테디는 '말러예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과 피아노 사중주의 멜로디와 함께 테디는 과거로의 회상에 빠져듭니다.
종전을 코앞에 둔 유대인 수용소, 패전을 직감한 나치 장교는 자신의 방에 말러의 피아노 사중즈를 틀어놓고 입 안에 권총을 넣어 자살을 시도합니다. 테디가 나치 장교를 발견하였을 때 이 음악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아직 숨이 붙어있던 나치 장교에 대한 기억은 테디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됩니다.
유대인을 학살하고 생체 실험을 하던 장교가 사랑했던 유대인 작곡가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 이 아이러니함에 대한 회상과 함께 코리 박사와 그의 동료 의사에게서 나치의 잔재를 느끼며 혐오감에 사로잡히는 테디, 이 장면은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을 완성시킨 클래식 작품이 바로 스산함과 공허함이 교차하는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 가단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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