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독재자',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중 1막 전주곡
흑백 영화의 시대, 최고의 희극 배우이자 영화감독, 왼손잡이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찰리 채플린 (Sir Charles Spencer 'Charlie' Chaplin, 1889-1977)'은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 <시티 라이트>와 같은 작품을 통해 지금도 기억되는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입니다. 딱 붙는 정장 코트에 어울리지 않은 넓고 헐렁한 바지와 마치 피에로의 신발 같은 커다란 신발과 삐딱하게 쓴 둥그런 챙모자와 지팡이는 찰리 채플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방랑자 (The Tramp)’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며 코미디언으로 유명해진 그는 1939년 히틀러와 나치 독일에 의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들을 풍자한 영화를 만듭니다. 이 영화가 바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풍자 코미디 영화인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동갑내기였던 채플린은 <모던 타임스>와 함께 자신이 제작한 가장 비판적인 영화라 손꼽히는 <위대한 독재자>에서 나치를 쌍십자가 (Doppelkreuz)당으로, 히틀러를 힌켈로 패러디하였고, 이 때문에 당시 히틀러를 옹호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에 굴하지 않고 영화 제작에 집중한 채플린 자신은 주연인 ‘힌켈’이자 힌켈과 똑같이 생긴 유대인 이발사로 1인 2역을 맡았습니다.
유대인 이발사는 토매니아 (Tomaninia, 영화 속 가상의 국가) 군의 소속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중요한 정보를 전하던 중이 슐츠라는 장교를 도와줍니다. 슐츠와 함께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이발사는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 사이 전쟁에서 패한 토매니아를 장악한 쌍십자가당과 그들의 리더인 힌켈은 토매니아를 독재국가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내무 장관 ‘가비치 (Garbage, 영어로 쓰레기란 뜻, 독일의 괴벨스를 패러디 함)’와 국방장관 ‘헤링 (Herring, 청어란 뜻, 독일의 괴링을 패러디 함)’를 참모로 한 힌켈은 홀리는 연설을 통하여 토매니아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유대인들을 탄압합니다. 이발소를 다시 열고 영업을 시작한 이발사는 이웃 아가씨 한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사령관이 된 슐츠는 유대인 탄압 정책을 항명하다 체포되고 이발사와 함께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힌켈은 오스테를리히를 습격하려 하지만, 슐츠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한 이발사로 오해받아 체포당합니다. 이발사는 힌켈로 오해를 받아 슐츠와 함께 오스테를리히로 향하게 됩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지금도 회자되곤 하는 명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히틀러의 연설을 ‘복붙’한 것 같은 힌켈의 연설 장면과 이발사가 인류에게 던지는 마지막 연설 장면은 지금도 전쟁을 멈추지 않는 우리 인류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명연설입니다.
이발소의 면도 장면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등장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과 함께 클래식 음악이 살린 명장면이 있는데, 바로 세계 정복을 꿈꾸는 힌켈이 지구본 풍선을 가지고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이 때 등장한 음악이 바로 바그너의 작품입니다.
아리안 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유대인 작곡가가 해를 끼친다는 사상의 글을 발표하였기에,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 음악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음악극 (Musikdrama)’라는 종합 예술의 영역을 창시한 바그너는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하고 작곡하고 지휘를 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WWV.90)>,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 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uernberg, WWV.96)>, 그리고 독일과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4개의 오페라 모음인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WWV.86)>을 작곡하였습니다. 특히 총 16시간 정도의 연주시간을 자랑하는 니벨룽의 반지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바그너가 1850년 작곡하고 리스트의 지휘로 초연된 오페라 <로엔그린 (Lohengrin, WWV.75)>은 독일의 중세 시대 작가 ‘볼프람 폰 에센바흐 (Wolfram von Eschenbach, 1170-1220?)’이 중세 시대 백조 기사의 전설을 토대로 한 서사시 ‘파르치팔 (Parzival)’을 기초로 바그너가 직접 쓴 대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3막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브라반트 공국’의 공작이 사망한 후 어느 날, 공작의 딸 엘자와 그녀의 어린 동생 고트프리트는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고트프리트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공국을 차지하려던 계략을 가지고 있던 텔라문트 백작은 황제에게 고트프리트의 살해 혐의로 엘자를 고소합니다. 황제는 엘자와 텔라문트가 결투로 승패를 가려 유, 무죄의 여부를 가리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엘자는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기사를 찾지만 쉽지 않습니다. 꿈에서 본 ‘은빛 갑옷의 기사’가 백조를 타고 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하는 엘자를 보며 사람들은 수근거릴 뿐이죠. 결투의 날이 밝아오고 실제로 백조를 타고 기사가 나타나 엘자를 대신해 싸우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대신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묻지 않고 결투에서 이기면 엘자가 자신과 결혼을 할 것을 약속 받습니다. 기사는 결투에서 승리를 하고, 결혼 첫날밤, 엘자는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나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백조의 기사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엘자에게 실망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성배 기사단의 이일원이자 파르지팔 왕의 아들 로엔그린 왕자임을 밝힙니다. 성배의 기사는 신분을 의심받는 순간 그 힘을 잃어버리고 다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그는 떠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줄 알았던 고트프리트는 마녀의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해있었고 로엔그린은 그를 데려 온 것이었습니다. 마법에 풀려나 본 모습을 찾은 고트프리트를 보고 로엔그린은 “무릎을 꿇으세요. 브람반트의 공작이십니다”라고 모두에게 말하고 동생을 끌어안습니다. 이 모습을 뒤로 한 채 로엔그린은 강을 건너 그들을 떠납니다.
https://youtube.com/watch?v=I_m7PN5sn1U&feature=shares
엘자와 고트프리트의 결혼 장면에 등장하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이 오페라는 서곡 대신 전주곡이 등장합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 등장하는 1막의 전주곡은 서곡들처럼 테마나 주선율을 직접적으로 등장시키지 않고 현악기의 연주를 통하여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바그너는 이 곡에 대하여 “맑은 하늘에서 천사가 성배를 들고 나타나자 성배의 광채가 세상을 채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지구본을 들고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듯한 힌켈의 경건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것이 로엔그린 전주곡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헝가리 무곡 5번의 이발사 장면에 밀려 많이 알려지지 못하였지만 영화 <위대한 독재자> 속 바그너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살린 클래식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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