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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07

환상 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

by 쏘냥이

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7> Symphonie fantastique



https://youtu.be/tfzGDHt7mJQ?si=weSYfTkAr-wEayNE



"왜, 농담으로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란 말이 있잖아요. 누구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시간이 해결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항상 다시 사랑에 빠지고 상처입거나 상처를 입히고.. 그렇게 반복하며 그렇게 살아가는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환자분의 마음의 그릇 크기와 저의 마음의 그릇 크기가 다르듯, 어떤 사람은 쿨하게 지나갈 수 있는 문제도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기 힘든 큰 시련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죠. 음.... 이 음악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그 날은 푸른 수염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게 음악을 함께 들을 것을 권유하며 어항 옆에 장식처럼 놓여있던 LP 플레이어에 레코드판 하나를 올렸다. 조용하게 시작하여 열정적으로 흐르는 관현악단의 음들의 정신을 빼놓을 정도였다.


"이 곡은 프랑스 작곡가인 베를리오즈가 '어느 예술가의 일생을 5개의 파트로 들려주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환상 교향곡이예요. 마치 베르테르처럼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던 작곡가가 그 사랑이 실패하자 작곡한 곡이예요. 여배우에 대한 사랑이었는데, 원래는 꿈과 정열, 무도회, 정경, 단두대, 발푸르기스 밤의 악몽이라고 부제까지 붙어있긴 하지만요. 저는 이 베를리오즈가 다섯 개의 방을 극단적으로 지나가며 작곡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응? 단두대인데? 근데 발푸르기스는 뭐지?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내게 그는 마녀의 밤이란 독일 쪽의 축제라고 알려줬다. 그럼 죽음의 밤을 지나서 마녀가 되는건 내가 아는 방이 아니긴 한데, 작곡가는 그걸 나름의 수용이라 생각했던건가? 뭐.. 워낙 클래식 매니아인 푸른 수염 선생님이니 이것도 억지춘향으로 연결지었나보다. '나도 나지만 저 선생님도 저 선생님이다'란 생각까지 든 것이면 나도 이 푸른 수염 선생님에게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상담사와 환자가 아닌 무언가 더 친밀해진 것과 같은 느낌? 재미있네.


"저번 상담에 비해서 저의 분노는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선생님 말씀대로 그 사람의 그릇은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니, 더는 저를 상처입히지 않게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네요. 이제 저는 그 다음 방으로 갈 수 있는 것이겠죠? 빨리 벗어나고 싶네요."


한참을 음악을 들으며 어항 앞에 서서 열대어를 바라보던 푸른 수염 선생님은 순간 멈칫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타협의 방으로 오셨군요. 다른 사랑도 찾아보고 잊어보려 애쓰고, 떠나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죠. 다행입니다. 우리는 단두대로 산책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하하"


문득, 나는 오늘도 그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맑은 눈의 젊은 남자가 앞의 상담 시간에도, 7시가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제 전에 오시던 그 분은 이제 안 오시는건가요? 꽤나 오래 못 뵌 것 같은데..."라는 말을 뱉자마자 푸른 수염 선생님은 갑자기 얼굴이 서슬 퍼런 단두대의 사형 집행인과 닮은 차가운 얼굴 표정을 짓고 "다른 환자에 대한 내용은 기밀유지서약 때문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란 답을 하였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아... 제가 5시에 오고 싶어도 퇴근 후에는 도착이 힘들 것 같아서요... 바쁘신 선생님께서 기다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당황한 기색을 갖추지도 못한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특유의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 걱정마세요. 저는 환자분과 상담이 매우 흥미로우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일부러 이 시간은 모두 빼놨으니까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마음 한 쪽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어떻게 지워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그 날은 정말 오랜만에 가까운 친구들이 곱창 집에서 모인다는 이야기에 함께 하기로 했고, 그렇게 너무나 오랜만에 소주잔을 짠~하며 일상 얘기를 하며 상담 시간에 느꼈던 불편함을 지워가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며 제대로 된 남자를 소개 시켜주겠다고 소개팅 날짜를 잡자는 친구들에게 '그' 유명한 푸른 수염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이겨내는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친구 한 명이 내 말을 끊더니 "저기 나오는 저 상담하는 사람이 그 사람 아냐?"란 말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맨날 TV 나오는 유명한 의사래~라는 말이 무섭게 내 등 뒤의 TV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말은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야산에서 사망한지 2-3주 정도로 추정되는 30대 초의 남성 A씨의 시신에서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의 사체에서 훼손된 일부는 야생 동물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는 잇따른 주식 등의 투자 실패로 신병을 비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주변 지인들의 말로는 그는 삶의 의지가 강했고,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푸른 수염'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유명 심리 상담 의사에게 정기적인 상담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다음날 오후,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원에게 회사에서 급하게 일이 생겨 다음 상담을 취소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다음 상담은 일이 정리되고 다시 잡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퇴근 후 6시가 되자, "푸른 수염 상담 센터"란 이름이 찍힌 번호로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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