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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06

술 취한 시인의 노래 (Fill up the bowl!)

by 쏘냥이

푸른 수염 심리 상담 센터 <6> Fill up the bowl!



https://youtu.be/pWsQO7UZrMw?si=Kwn6cbQeNooHy0r3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그가 제게 커피 한 잔 하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저녁에 만나기로 하지 않고 거절을 했다면, 그렇게 스친 인연의 마지막이 되었을텐데요. 너무 화가 나요. 왜 저는 그 사람 뺨이라도 한 번 때리지 않고 질질 끌려다니기만 한걸까요?"


점차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 없어 꽉 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화를 쏟아내듯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연인이 되었다. 이전의 모든 일은 잊어버리자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듯 모든 것을 과거에 두고 현재만 보려 했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일상이 되고, 편안함과 평범함의 하루가 이어질 때 쯤, 그가 갑자기 사표를 내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친구들이자 나의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겨서 내게 그의 안부를 묻고, 왜 나는 그의 부모님과 식사 한 번을 하지 않았나 원망하고, 그렇게 그의 핸드폰 번호도 사라지며 그는 내 삶에서 다시 한 번 사라져 버렸다.


"휴가를 내고 그가 갈만한 곳들부터 찾아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나중에는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닌지 실종 신고라도 해야하는 것인지 걱정을 했어요. 그 때 제게 메일이 하나 왔더라구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당분간 떠나고 싶어 여권만 챙겨 이미 외국에 와있다고... 알고보니 1년을 그렇게 몰래 준비했더라구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술을 마셔도 아무리 마셔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1년이 지난 뒤에 멀쩡하게 또 제 집 앞으로 그가 찾아왔더라구요.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며 다시는 잠수를 타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빌더라구요."


갑자기 진한 위스키가 마시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벌써 한 달이 넘게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또 그를 받아준 내가 불과 얼마 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자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떠나버린 그의 말에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긴 나의 마음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럴 수 있죠. 그게 바로 두 번째 방의 모습이예요. 마음껏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나을 수 있어요.. 물론... 저도 그런 적이 있답니다. 부끄럽긴 하지만요. 너무 사랑해서 그의 치부까지 받아준 것이죠. 당신도 벗어날 수 있어요.. 흠... 오늘은 뒤에 환자가 없어서 시간이 좀 남는데, 제 얘기를 해드릴까요? 이건 상담은 아니구요. 다음 방인 타협의 방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고, 저도 환자분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푸른 수염 선생님의 방을 엿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옆에 있지 않으면 잠이 들 수 없을 정도의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고, 그렇게 사랑을 하고 그걸 음악으로 풀어냈던 사람이죠. 그 사람 덕분에 제가 이렇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매일 밤 술잔을 기울이며 옆에 있어줄 사람을 찾아나서던 그녀를 막기 위해 나 역시 그 사람의 앞자리에 앉아 술잔을 비우고 만취하곤 했어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사람은 저를 옆에 두려고 하지 않았어요. 항상 저는 그 사람 앞에 있었죠. 결국 그 사람에 의하여 나 역시도 망가져가는 것을 느끼고 어느 날부터 그 사람의 연락을 피하게 되었죠.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제 자신이 더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제 집 앞에 서있더라구요. 자신의 모든 치부를 아는 사람이 저이긴 하지만 제 치부 역시 모두 다 알고 있으니 입을 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서슬퍼런 말을 뱉고 떠났답니다."


아... 그의 첫사랑 이야기인가? 지독한 사람이네..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으셨겠지?


"꽤 큰 상처였어요. 그 사람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어요. 그렇게 그 사람 앞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죠. 아! 물론 지금은 절대 그러시면 안됩니다. 범죄니까요. 아무튼 분노를 잘못된 방법으로 풀었던 것이죠. 그 사람은 뭐..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지 않을까요?"


화를 달래는 방법도 여러가지란 생각과 함께 나는 점차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만큼 푸른 수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도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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