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Die Widmung)
https://youtu.be/r9ZV6uZWXzk?si=JClIk0ac4UiNDK6A
"선생님, 혹시 독일 작가 '보토 슈트라우스'를 아시나요?"
세 번째? 아니면 네 번째 상담에서 한참을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성악가의 목소리를 듣던 내가 물었다. "아뇨? 한국에도 알려진 작가인가요? 제가 아는 슈트라우스는 요한이랑 리하르트밖에 없어요. 하하", 역시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보이는 것을 알게 모르게 티내는 푸른 수염 선생님이다.
지금 흘러나오는 가곡은 나도 익숙한 가곡이다. 그렇게 홧김에 떠난 유학에서 만났던 친구, 그녀가 항상 부르던 노래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 곡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한 시를 가사로 해서 너무나도 힘들게 결혼할 수 있게 된 사랑하는 사람한테 결혼식 전날에 작곡해서 선물한 곡이거든. 나는 그 사람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 곡을 부를 때 우리의 앞날이 그렇게 아름답게 빛날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해"
...하지만 그녀는 슈만의 '미르테의 꽃'의 꽃말처럼 순백의 하얀 신부가 되지 못하였다. 순백의 천사는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죄악을 저질렀으니 천사는 힘들지언정 미르테, 은방울꽃은 되지 않았을까?
"헌신하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가곡이 언젠가 자신에게 비극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거가 아닐까. 결과를 다 아는 우리에게는 이게 비수처럼 찔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보통 상담 선생님에게 그의 개인적인 얘기를 묻는 것은 금기라고 알고 있던 내가 무심코 이렇게 말을 뱉어버리고 아차~ 하고 있을 때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아.. 슈만이 아내 클라라에게 결혼식 선물로 이 가곡을 선물했지만, 결국 브람스와 아내 때문에 정신병에 걸린 것이라는 이야기 때문이실까요? 사실 슈만 가족력도 있었고, 마지막 2년간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해서 그렇지 그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8명이나 있었기에... 우리는 단편적인 것만 보는 것이죠. 가끔은 먼 미래의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죠. 우리는 그런 결말을 알더라도 지금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너무나도 아름답잖아요."
그래, 우리는 친구가 아니니, 푸른 수염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감출 수는 없지만, 여긴 내 얘기를 하려 온거니까..
"슈트라우스의 <헌신>은 독일의 한 서점 주인이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 채 여자친구가 돌아오길 바라며 글을 쓰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예요. 전혀 다른 헌신인거죠. 결국 모두 파국으로 향하게 되지만요."
그렇게 나는 헌신적이고 착하디 착했지만 배신이라는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린 그녀에 대한 생각을 오랜만에 꺼낸 채 낡은 건물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