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천선란)
#천천히 달린다는 것의 모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다. 경마장에서는 빠른 말이 1등을 하지만, 느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주로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았으므로,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천천히 달린다는 말의 모순이 느껴졌을까. 나에게 달린다는 말은 빨리 달려서 누구보다 먼저 목표점에 다가가야 한다는 다음 문장을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달린다는 말은 너무 어색하게 그리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SF 과학 공상 소설이다. 하지만, 다른 SF 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내부분의 SF 장르의 문학은 인간이 로봇과 미래 기술을 바라보며 서술하는 입장이라면 이 소설은 AI를 가진 로봇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미 우리 일상에 너무나 친숙하게 들어와 버린 AI 이기에 외계인이나 화성에서 살기와 같은 소설보다는 마치 내일 당장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친숙함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소방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보경'과 그녀의 두 딸,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은혜' 그리고 AI 로봇을 가족으로 끌어들인 '연재' 이 가족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더 빨리, 더 높이라는 목표의 결과로 탄생하게 된 AI '콜리'의 눈으로 보는 인간들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은혜는 사람들이 전가한 '한 사람의 몫'을 아직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반쪽짜리 사람이랄까.
인간은 더 빨리를 외치며 주로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렇기에 그 주로에서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만 내몰았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천천히 달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지만 어떻게 천천히 달리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어떻게 하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앞만 보며 달리는 사이 놓쳐버린 것들
"한 번 외출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중략)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당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기술 발전을 돌아보면 인간은 인간 중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기 위해 아니면 그것을 넘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기 위해 발전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러한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 중에 최고가 되기 위해 만들어 낸 기술들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될 것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은 많은 SF영화다 음모론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자신이 온전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온전한 자신의 인생의 몫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어떨까. 우리가 발달한 기술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뱡향은 이 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
"당신은 언제나 저를 인간처럼 대해주시네요."
콜리의 말에 민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제가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저를 인간처럼 대할 때 기쁜 이유는 당신이 저를 옆에 실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인간 옆에 오래 있는 기계이고 싶어요"
"왜?"
"저는 기계니까요."
이 소설이 과학 공상 소설인 이유는 우리는 절대 기계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기계의 마음이라는 표현 자체도 이상하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가 직접 '콜리'와 같은 AI 로봇을 만들어 옆에 앉혀놓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기계이고 싶다는 콜리의 말이 진짜인지 알 길은 없다. 실제로 많은 지구 정복 영화처럼 인간을 누르고 지구를 정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구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비단 기계뿐만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나는 이곳에서 충분히 나인 모습으로 머무르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회에 의해 학습된 동기부여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나의 자리를 벗어나서 더 나은 곳, 더 좋은 곳을 목표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틀리다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자리에서 나로 충분히 사는 것
유럽에서의 생활과 한국의 생활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한국에서는 누군가 쫓아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 사회적인 압박이 든다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 열심히 살지 않는 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에 끊임없이 나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그래서 쉬는 그 틈 조차도 '내가 지금 이렇게 쉬어도 되나?' 불안감에 휩싸인다. 쉽지는 않지만 유럽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가끔은, 생활이 지치고 하루가 무력해질 때면 이제는 그냥 쉬어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잘 쉬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려 노력한다. 그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놀랍지만,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감정을 내가 존재하는 이 위치에서 지혜롭게 풀어내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더욱더 온전하게 풀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보경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던 사람이 오래도록 비워둔 자리를 뜻하지 않은 것이 채웠다.
슬픔도 배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는데 놓쳤다. 현실의 무게감이 몸을 눌러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몸속에서도 흐르지도, 버릴 수도 없는 물로 오래도록 고여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투데이가 달리는 걸 좋아했어. 나도 그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니한테는 그게 위로였나 봐. 아니면 군더더기 없는 행복이었든가."
우리는 행복함, 슬픔 그리고 위로를 할 줄 안다. 하지만, 앞으로 바쁘게 가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온전하게 그 감정을 느끼는 법을 충분히 익히지 못한다. 슬픔도 배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작고 큰 이별을 인생에서 참 많이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부터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 슬픔을 억누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엉뚱하게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나을 때도 있다. 그렇기에 슬픔을 적기에 내보내는 연습도 충분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온전하게 내 것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가진 행복을 남과 비교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행복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슬픔과 기쁨을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인생에서 아끼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공감이 AI 로봇이 하는 듣는 귀와 끄덕일 수 없는 고개를 넘어 마음으로 기뻐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 잘 들어주는 것과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나를 싫어하는 삶을 포용하는 큰 인류애적인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의 사람들에게는 작지만 깊은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언젠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질투 없이 온전히 나누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문장을 듣고 나서는 나의 인생의 목표는 내가 이 세상에서 눈감을 때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나의 인생이 이러한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베풀고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인생이 참 아름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