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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닥 김훈 Jan 07. 2024

1969년, 고독 3일차...

나는 지금 길을 가다가.. 쉬고 있다. 정확히 쉬고 있는 건지..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항상 같은 시간 처럼 움직이던 움직임이 이제는 없다. 가끔씩 나가고 들어오고.. 그정도의 활동...혹은 움직임 만이 있다.


예정에 없던 오십대라는 나이에.. 나는 사실 준비가 안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어졌고.. 다행히 의지로 가능해서.. 직장을 마무리하고..

혼자가 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고독해지고 있다.

물론, 고독이라는 것이 좋거나 싫거나의 기호의 문제는 아니다. 내 스스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고.. 에정하지 못한 오십대라는 나이를 그렇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그냥 고독해지기로 했다.

물론, 진정 내 스스로의 고독을 가지거나 그런것은 아니다.

고맙게도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것이 있어 나를 즐겁게도 혹은 슬프게도 한다.


수년전 아버지가 짧은 투병생활을 마치고 돌아가셨을때.. 나는 크게 울지 못했다.

한국적인 장례에서 아버지의 부고,,, 그러니까 부모의 부고는 큰일이었으며.. 그것은 읍조리는 듯한 곡이 필요한 그런 절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짧은 투병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아버지의 죽음에 무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마음이 좀 죄송스럽기도 하고..

하여간, 그럼에도 아버지의 죽음은 서서히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고독해져가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하나 하나의 단절을 기다리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어차피 나는 고독해질 것이며.. 그 고독의 끝자락까지 가보면 답이 있겠지 그런 생각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많다.


물론, 그렇다고 나의 시간에 대해 허세하거나 과신하거나 혹은 겁이 없다는 것은 결코아니다.


나는 부지불식 중에 찾아올지 모를 죽음이 항상 두렵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죽음이 두려웠고 경계했다. 가능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정면으로 다가갈 자신이 하나 없다.


죽음은 무서운 사신이다.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 죽음을 피할 수 만 있다면.. 가능한 시간은 있다.

그럼으로 고독을 그냥 그대로 두면서 기다린다. 


기다린다.


어차피 난 주어진 삶을 살고 있기에..

주어진 것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주어진 인생..이랄까..


젊은 날은 자유를 찾았던 것 같다. 숙명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가난..


흐.. 싫은 단어.


다행이 지금은 그 단어로부터 조금은 풀려나와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항상한다.


가끔씩 여행을 가면서.

고독해지는 것을 지속하고 있으니..


고독의 끝은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떤 무언가를 줄 것인가?


내 나이 오십이 넘은 삶은 얻고자 해서 얻은 것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삶이 

나에게 허용해준 주어진 것에 대해 충실했던 것 같다.


주어진 것.


혹여 있을 그것을 기다리며..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보고..

또..


고독해져 본다.


이미 난 오십이라는 나이에서 벌써 네살이 더 들어버리지 않았나.

익숙하지 못한 오십대라는 나이를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것은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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