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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닥 김훈 Feb 03. 2022

<부기우기>단편

문자가 한통 왔다. 아니 카톡이 한통 왔다고 하는 게 좋겠다. 

"카톡"

"부고....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

"사망일은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저쩌.. 어찌.. 그렇고 저렇고....입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한 줄 메시지로 알게 되었다. 물론, 내 아버지다. 일평생 성실하게 바람피우면서 살았던 남자의 죽음이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에게 온 것이다.


어쩐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뭐.. 무슨 일이 있기는 한데...."

"왜.. 내일 회의 진행 못해?"

"음... 음.. 좀.. 고민되는 일인데... 음.. "


"왜 뭔 일인데.."

남자가 지나치게 다가와서 나에게 물었다. 


"아냐.. 됐어.. 별일 아냐.. 내일 일정대로 그냥 하면 돼.."


"심각한 일 아냐?"

"표정이.."


"무슨 표정..."


남자의 사무적인 대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좀 혼자 있는 시간에 말이다... 우선은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평생 바람을 피우던 남자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니 어쩌면 내가 태어난 날에도 다른 여자를 찾아 집에 없거나 엄마 옆에 없거나 그랬을 것이다. 굳이 그런걸 성실하게 할 필요가 없을 텐데 그 남자는 그랬을 것이다.


"예에.. 너네 아빠 또 바람났다며... 이번엔 누구랑.."

"그 애가 뭘 알아.. 그리고 애한테 그럴걸 왜 물어봐..."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수많은 여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들어야 했다.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톤의 질문.. 마치 음악소리처럼 

너.네. 아빠. 또. 바람. 났다며... 

무슨 음표도 아닌 것이 계이름처럼 들렸다. 


아빠라는 사람은 주제넘게 예술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던 것 같다. 뻑하면 영화 보러 가자... 뻑하면 그림 구경 가여지... 춤도 추고... 춤... 춤이 멋져야 하는데.. 아... 애는... 흥이 없냐...


가난한 주제에 예술을 좋아하고 그리고 참...... 없는 살림에 바람도.... 하아.. 짜증 나..


"여보세요"

"누구신데 저한테 이런 문자.. 아니 카톡을 보내셨어요.. "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어요.. 고등어가 두 마리에 팔천 원 하는 것도 아닌데 대답이 없어요... 대답이.. 

"이 보세요!"


"......."


염병.. 나름 배운 사람이라 욕도 안 하고 우아하게 말하고 싶은데... 자꾸 이러면 욕이 나올 것만 같다.

"이보세요.. 왜 저한테 이런 카톡질 했냐고요... 우리 엄마 돌아가신지가 10년이 지났어요... 왜 나한테 이런 걸 보내는 거예요"


"..."


아.. 씨.....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배운 입장에서 처돌아가는 쌍욕을 할지도 모른다.


"얘... 너네 아빠는 정말 나쁜 인간이야.. 니엄마 죽어라 일하면서 너 키우려.. 살림하려.. 지랄 염병을 다하는데... 니 아빠라는 인간은 맨날 바람만 피고..."


"그래서 뭐..."


"어머 애... 너 어른한테 뭐 하는 소리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인간 바람피운걸 왜 나한테 지랄이야..... 뭐.."


"어.. 이.. 싸가지 없는 ....그러니까 지 애비처럼 ..."


"내가 모를 줄 알아.. 당신도 그 인간이랑 바람피웠잖아... 당신이 그 인간이랑 여관 들어가는 거 난 봤단 말이야.. 내 말이 틀려.."


"어.. 뭐 이런 어린 게 미친 소리를 하네... 어우... 재수 없어.. 어린년이 표독해가지고....그러니까...애비가 바람을 피우지..."


하아.. 답답하다. 

일생을 여인들과 놀다죽은 사람의 부고를 왜 나한테 하는가... 그 사람의 자식이라는 이유겠지만... 인연이 종료한지는 엄마가 가신 후 10년이 지났다. 그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간이 부고나 날리고 있고...


"왜 울어"

"아빠가 뭔데 서럽게 우는거냤 말이냐..."

"뭘 잘한게 있어 서럽게 울고 지랄이야... 당장 꺼져... 어떻게 여기를 와서 울어"


남편이라는 인간은 부인이 죽자 정말 어이없게도 그 자리에 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영정사진을 꼭 끌어안고 세상 떠나갈 듯이 울었다. 틈나는 대로 바람만 핀 인간의 통곡에 어이가 없어 눈물도 안났다. 


와...인간 저럴수 있을까..


"너네 엄마는 지루박을 잘 췄어.."


"뭐..?"


"정말이야..지루박을 잘 추고.. 춤에 소질이 많았어.."


뭐.. 이런 개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하나. 아빠라는 인간은 도대체 엄마는 뭐 이런 인간이랑 결혼을 해서 이 고생하다 돌아가신 거야..


"넌.. 몰라... 엄마의 환상적인 턴과 퀵. 퀵.. 슬로를"


"아.. 씨.. 미치겠네... 나가... 나가라고.. 그게 지금 여기서 할 말이야...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며 돌아가셨는데.. 갑자기 나타나 통곡하더니... 별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 이거"


"뭐야... 뭔데..."


"돈... 이거 너 다 가져... 내가 나중에 더 생기면 더 줄게..."


"됐어.. 꺼져.. 추잡한 돈.. 가져가.. 아빠가 번 돈들은 다 지긋지긋해... 또 어떤 여자 돈을 훔쳐온 건지 알 수도 없고.. 불결하고.. 짜증 나... 꺼져.."


"그래도 가져.. 욕을 하던 뭘 하든 상관없어. 그래도 가져.. 어쨌든 돈이 자나.. 갈게"


"인간아... 이거 가져가.. 가져가라고.."


아빠라는 사람은 주머니에서 돈뭉치들을 마구잡이로 꺼내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떠나버렸다. 바지 주머니, 작업복 주머니, 옷 안주머니.. 심지어 양말 속에서도 돈을 꺼내서 마치 한무 대기 쓰레기를 쌓아 놓듯이 돈을 쌓고는 엄마의 장례식장을 떠났다.


저런 게 아빠라니 아.. 씨발..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10년이 흐르고... 다시는 안 봐왔는데.. 부고가 오다니..... 뭐냐..


"저... 선생님은 따님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똑똑하고 착하.."


"저기요.. 저 착하지 않아요.. 그리고 왜 저한테 이런 카톡질을 하신거구... 도대체 누구세요"


"선생님은 부기우기 였던거 같아요. 부기우기"


"네? 부기우기요?... 뭔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선생님은 상당히 경쾌한 스텝으로 몸을 움직였어요.. 그리고 발의 스텝을 중시하셨죠... 하나하나 스텝에 대한 열정이랄까 그런게 있었어요.. 부기우기... 물론, 가요도 좋아했고, 지루박도 무척 사랑하셨는데.. 결국은 부기우기... 였던 거 같아요. 항상 스텝에 스타카토 같은 게 있으면서 부루스 한 묘한 슬픔.. 아니면 그리움.. 아니면 아쉬움.. 한.... 뭐 그런 게 있었어요"


"저기요.. 왜 저한테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고 뭐고가 없잖아요.. 그리고 부기우기 건, 뭐건 그게 저랑 무슨.... 그냥 전화 끊을게요.. 그 딴 이상한 소리 그만이요"


"아니 끊지 마세요.. 제발.."

"돈을 따님에게 최대한 많이 남겨주려고 하셨어요.. "


"저 돈 저 쓸 만큼 있어요.. 됐으니 끊어요.."


"저기요 아버지는 정말 부기우기였어요.. 정말"


"미친.. 부기우기 건 뭐건 끊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fNM44t7mcBw&t=17s

https://www.youtube.com/watch?v=fWDfxgngrNc


* 총총

추신 : 그다음이 써 질지는 모르겠다...... 부기 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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