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 미리보기)
글에 신뢰를 높이기 위해 잠깐 소개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정말 유명한 한의사이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한의대를 다닐 때 수업 시간에 과거를 풍미한 한의사 네 명 중 한 명으로 우리 아버지 이름이 나왔다. (증거 사진도 첨부한다. 아래 빨간 네모가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시다.)
이건 전업주부로 일하고 있는 이제 곧 예순을 맞이할 경자 씨의 이야기이다.
경자 씨는 무역회사를 다니는 남편과 아나운서 준비생인 딸과 살고 있다.
남편은 무뚝뚝하고 영 재미가 없고, 딸은 아나운서 준비만 3년째 하고 있다.
아나운서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지금이라도 취직을 했으면 좋겠다고 딸에게 넌지시 말해봤지만 신경질적인 반응만 돌아온다.
경자 씨의 자랑은 그래도 번듯한 내 집이 있다는 점과 건강하다는 점이다.
남들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는데, 경자 씨는 허리와 무릎 조금 아픈 것 말고는 다행히 건강하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딸이 이제 아나운서 준비를 그만두고 유튜버를 하겠다고 말을 해왔다.
경자 씨는 놀랐고, 남편은 화를 냈다.
소리를 지르는 남편과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딸 사이에서 경자 씨는 문득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고, 두야
그날 저녁 이후 경자 씨는 가끔씩 앞머리, 즉 이마가 아파왔다.
처음에는 좀 아픈 정도였기 때문에 타이레놀로 충분했다.
그러나 두통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강도가 심해지고, 아픈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머리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파왔고,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두통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경자 씨는 그렇게 재밌게 다녔던 문화센터 민화 수업도, 계모임도 나가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두통은 눈에 보이는 병도 아니라 처음에는 쉬라고 하며 걱정하던 남편과 딸도 점점 무관심해진다.
경자 씨는 이불에 누워 눈물을 찔끔 흘린다.
어느 날 같은 계모임의 주원 씨가 박카스를 사 들고 병문안을 왔다.
경자 씨는 오랜만에 그동안 못했던 하소연을 실컷 했다.
주원 씨는 그런 경자 씨를 걱정하며, 잘하는 한의원에도 한 번 가보라고 한의원을 소개한다.
솔깃한 경자 씨는 딸을 꼬셔 함께 한의원에 가자고 설득하고,
딸은 처음에는 귀찮아하다 경자 씨의 축 처진 등에 결국 한숨을 쉬며 한의원에 가기로 약속한다.
약속의 주말 경자 씨는 딸과 한의원에 입성한다.
그곳에는 백발의 수염이 지긋한 한의사가 앉아있다. 좀 신뢰가 가는 듯하다.
백발의 한의사는 경자 씨의 증상을 듣고, 맥을 짚고, 이것저것 증상을 물어보더니, 놀라지 마시라,
경자 씨는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소개를 받아 시간을 내서 찾아간 곳이기 때문에,
결국 긴가민가 하면서 처방받은 소화제를 먹는다.
신기하게도 두통은 ‘소화제를 먹고’ 가라앉고,
경자 씨는 즐거운, 그렇지만 약간은 머쓱한 마음으로 한의원에 가서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는 전업주부 경자 씨의 이야기이다.
지어낸 이야기냐고?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개인정보 때문에 이름만 바꾸었다)
두통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는 한의원, 백발이 지긋한 약간 무서운 한의사가 있는 한의원.
이 기이하고 이상한 (하지만 잘 알면 사랑스러운) 한의원이 바로 아버지의 한의원이자,
내가 취직한 한의원이다.
후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의학에서 두통은 머리의 어느 위치가 아픈지에 따라 그 원인을 다르게 본다. 앞머리 두통, 즉 전두통의 경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체기’이다. 김밥 먹다 체했다 할 때 그 체기를 말한다.
즉, 경자 씨는 그날 저녁 체해서 두통이 생긴 것이다.
믿기 어렵지 않은가?
나도 이성과 과학, 증거를 사랑하는 MZ세대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한다.
사실 이 글도 그래서 쓰게 된 글이다.
글에 신뢰를 높이기 위해 잠깐 소개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정말 유명한 한의사이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한의대를 다닐 때 수업 시간에 과거를 풍미한 한의사 네 명 중 한 명으로 우리 아버지 이름이 나왔다. (증거 사진도 첨부한다. 아래 빨간 네모가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시다.)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많은 환자를 보지도 않고, 한의사를 가르치는 일도 안 하시고,
그냥 소개받고 오는 환자분들만 진료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랑스러운 나의 아버지이시다.
여하튼 아버지의 수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치료하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환자분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것 같다.
환자분들은 두통약에 소화제를 처방하면 의심하고 미심쩍어하고 화를 낸다.
치료받고 나면 온순한 양이 되는 분들이 사실은 귀엽기까지 하지만…
한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내가 느끼는 점은 사람들은 한의학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점이 참 아쉽다. 내가 한의학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이 한의학을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환자분들을 위해서다.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교수님의 말처럼, 한의학을 이해하고,
그래서 거부감 없이 치료 방법의 하나로 한의학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덜 아플까?
그런 관점에서, 감사하게도 침수저로 태어나 아버지의 한의학 비기를 전수받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의학을 알리는 일.
앞으로 이 기이하고 사랑스러운 한의원에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지,
한의학적으로 병들을 어떻게 보는지 많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너무 딱딱하지 않게, 재밌게, 내가 본 환자분들의 케이스를 추가해서 말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에 한의학적으로 궁금한 병을 말해주시면 준비해서 다음 글을 올려볼게요!
p.s. 한의학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