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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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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un 30. 2023

텃밭농사 석 달

서울에서 내 땅을 가져본다는 것

매년 3월, 구청 홈페이지에서 텃밭 분양을 신청하고 당첨되면 1년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텃밭이 집에서 2분 거리에 있어서 늘 군침을 흘렸는데 경쟁률이 상당해서 매번 떨어졌더랬다.

몇 번 도전하다가 맘을 접은 지 몇 년.


그런데 작년에 이웃분이 당첨됐다는 게 아닌가!!

농사지은 채소도 여러 번 나누어주셔서 나도 올해 기대하며 다시 신청했다.

하지만 나는 또 떨어지고, 이웃분은 또 당첨!

애초에 누구든 당첨이 되면 반씩 나누어 쓰기로 한 터라, 이웃에서 분양받은 텃밭을 절반 나누어 받았다.

(결론 : 텃밭 절반도 너무 크고 먹다 지친다)



4월 1일

텃밭 시작의 날. 이미 퇴비도 주어 손질되어 둔 땅.

구청에서 상추 모종과 채소 씨앗도 나누어 주었다.



나누어준 상추 모종을 심고, 내가 산 씨앗과 구청에서 준 씨앗 중에서 쑥갓을 파종했다.

내 뒤로 보이는 절반이 이웃분의 밭이다.

구청에서 상추 모종을 많이 줘서 양쪽에 나누어 심었다.



4월 21일. 

싹이 오도도도 올라왔다. 



4월 27일

상추 모종이 또 생겨서 앞쪽에 또 심었다.

우리 집 상추 모종만 23 포기. 

아빠가 5 포기만 있어도 상추는 실컷 먹는다고 했는데.

그리고 묵은 씨앗이라 그런지 바질 싹이 계속 안 나와서 모종을 사다가 밭에 심은 날이다.



5월 3일

줄파종을 해서 싹이 아주 많이 나왔는데, 이때 아주 많이 솎아줬어야 했다!!!

이미 나와서 자라고 있는 게 너무 아까워서 잘 뽑아버리지를 못 했던 것이 문제.

정말 드문드문 심어야 크게 잘 자란다는 걸 아는데도 아까워서 뽑기가 힘들다.



5월 8일

너무 다닥다닥인데.... 아까워서 못 뽑고 계속 키웠다



5월 12일

주말에는 아이도 김매기와 수확에 동참



수확해서 샐러드도 부지런히 해 먹고.



5월 15일

비가 한 번씩 오고 나면 쑥 자라 있다!



5월 19일

갈 때마다 부지런히 수확



묵을 쑤어서 무쳐먹으면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5월 20일

쌈밥도 자주 먹고.

외식비 절약도 그렇지만, 일단 채소를 압도적으로 많이 먹게 된다.



5월 23일

뿌리째 뽑아온 건, 솎아냈다는 증거.

하지만 훨씬 더 과감하게 솎았어야 한다.



채식지향인의 한 끼. 

상추 3종, 청겨자, 케일, 쑥갓, 고수, 루꼴라.

쌈밥이 정말 어마어마어마하게 맛있다.

얼마나 감탄하면서 먹는지!!!

너무나 만족스럽다.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라면에도 고수를 아낌없이 넣어 먹는다!



5월 31일

청겨자와 케일. 너무 잘 자라네.

청겨자가 어마어마하게 톡 쏘고 맵싸하고 정말 맛있다.



이렇게 채소 한 상 차려놓고 현미밥 지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6월 5일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를 소비하기 바쁘다.



6월 6일

고구마묵을 쑤어서 무치고, 쌈밥도 먹고.



6월 8일

냉장고에 채소가 적체되기 시작했다.



채소 겉절이를 하면 숨이 죽어 그런지 아주 많이 먹을 수 있다.



6월 14일

고수 꽃대가 올라와서 전부 다 수확했다.

수확이 너무 늦었다.



그래서 이만큼 밖에 못 살렸는데.... 

사실 이것도 많다.



과카몰리 만들어 먹었다.



쌈밥의 날들이었는데, 매번 놀랍도록 만족스러운 끼니였다. 



6월 19일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려고 채소를 왕창 수확했다.




6월 23일

장마를 앞두고 케일을 전부 수확했다.



그래서 케일 페스토를 만들었다! 

바질 대신 케일을 넣고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케일을 코끼리처럼 먹을 수 있었다. 



6월 29일.

장마를 앞두고 거의 모든 채소를 수확했다. 

그래서 제육볶음이니 주꾸미볶음이니, 냉동실 깊숙한 곳에서 내내 잠들어 있던 것을 꺼내어 요 며칠 내내 쌈밥을 먹었다. 

매번 진짜 맛있다는 소리를 하면서 과식을 해도 채소를 많이 먹어 그런가 몸이 너무 가뿐하고 몸무게도 늘지 않는다. :) 


장마가 끝나면 가을 농사를 지어야 한다. 

가을 감자를 조금 심어볼 예정이고, 

겨울에 먹을 무와 배추, 섬초와 당근을 키워볼 예정이다.


친환경 텃밭이라 비닐 멀칭을 할 수도 없고 약을 쓸 수도 없는 텃밭인데, 그래서 더 마음 편하게 농사를 지었다. 

매일 가서 애벌레를 잡고, 풀을 뽑고, 물을 주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식물을 보는 기쁨이 컸다. 

작은 씨앗을 뿌렸을 뿐인데, 마술처럼 넓적하고 향긋한 채소를 만들어내다니! 


채식지향인이 된 지 3년 차인데, 압도적으로 많은 채소를 먹은 해가 되었다. 

내년에도 텃밭이 당첨되면 좋겠다. 

그러면 하지감자도 심고, 몇 개라도 옥수수도 심어보고 싶다. 

옥수수 심은 밭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서울 한복판에서 일 년에 3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조금이지만 땅을 가져보고 농사를 짓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지난 이틀간 폭우를 견뎌낸 땅을 보러 나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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