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식물 느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Nov 13. 2023

가을 농사

두 달 열흘의 기록

여름에 텃밭의 작물을 싹 다 거두고, 장마가 끝난 후 가을 농사를 시작했다.

가을 농사가 무언가 하였더니 김장을 준비하는 농사였던 것!


8월 말이 되어도 더위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밤낮의 길이가 있으니 식물은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텃밭이라 가을 농사 교육을 시켜주고,

거름과 무 씨앗과 배추와 상추 모종 나누어주었다.


교육받은 대로 가을 농사 시작 일주일 전에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고 고랑을 만들어 두었다.

작은 땅에 고랑을 만드는 것도 이렇게나 어렵고 힘들었고 8월 말이었지만 한여름 같은 더위였다.


8월 말에 시작했는데, 문제는 더위였다.

좀체 더위가 꺾이지 않았다.

모종이 죽겠다고 자빠지는 것이다.

특히 상추는 9월에도 뜨거운 햇볕에 누가 뽑아간 것처럼 녹아버렸다.


그래서 상추 모종을 사다가 다시 심었다. (그것도 20%는 또 죽었다)

결론적으로는 봄의 상추와 가을의 상추는 너무 다른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무와 배추였는데,

무는 씨앗을 배추는 모종을 심었던 터.

무는 씨앗을 심으면 3일 만에 새싹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게 온전치가 못했다. 온갖 벌레들이 새싹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좀 자라나 싶어도 제법 커진 떡잎을 또 누가 먹어치우고 또 먹어치우는 일이 발생.

새싹은 떡잎이 절대적이라 떡잎을 누가 파먹으면 죽고 만다.

발아는 잘 되어서 계속 씨앗을 심고 또 심고...  

총 40개쯤 파종했나 본데, 결국 온전히 살아남은 건 5개이다.


다행히 배추 모종은 10개 모두 살았다.

시들시들해져서 죽나 보다 했는데 기존 잎들은 말라붙는 동안 새 잎이 나왔다.   


무와 배추 수확까지는 씨앗과 모종을 심은 지 두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어떻게 이토록 놀라운 성장을 하는지!!!

지름이 2mm도 안 되는 무 씨앗이 두 달 만에 어떻게 2kg이 넘는 무로 변하는지,

엄지손가락만 한 배추 모종이 두 달 만에 어떻게 내 몸통만 한 배추가 되는 건지...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고,

그저 식물은 대단할 뿐이다.


8월 30일

배추 모종을 심으러 가는 길



8월 31일

다음날인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걱정하며 밭에 가보았다.

무 씨앗이야 땅속에 있지만, 배추 모종은 뜨거운 열기에 다 죽게 생겨서 걱정이 들었다.



9월 1일

무 씨앗이 젖은 땅과 만나면 삼일 만에 싹이 나온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이게 없어진단 말이야. ㅠㅠ

보름 동안은 거의 매일 없어진 자리에 다시 씨앗을 심고 또 심고를 반복했다.



9월 11일

다 죽을 것 같은 배추 모종이 열흘쯤 지나자 커졌다.

그리고 벌레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9월 12일

상추 모종을 사 와서 다 녹아버린 상추 자리에 다시 심었다.



쪽파도 몇 개 심었다.



9월 15일

삼일 지났을 뿐인데 배추가 훅 커졌다!

갈 때마다 놀란다.



9월 18일

다시 삼일 후. 놀랍게 커진 배추!



9월 21일

다시 삼일 후.

배추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라는 작물은 처음 본다!



살아남은 무 몇 개는 잎이 마구 나오고 있어서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배추가 너무 대단해서 그렇지, 무의 성장 속도도 대단하다.



9월 29일

내내 비가 오고 그래서 며칠 만에 밭에 갔다가 기절하는 줄.

작지만 무 모양이 생겨있었기 때문이다!

아, 정말 너무 신기하다.

이 무가 옆으로도 뚠뚠하게 자랄까? 정말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그런 무처럼 될까?



10월 5일

배추가 말도 못 하게 커지고 있다.

날씨가 여전히 너무 더워서 괜찮을까 걱정이 많은 데다가,  

애벌레와 달팽이와 배춧잎 딱정벌레가 배추를 먹고 있지만, 어쩌랴.



10월 19일

와!!!! 무가 되었다.

어떻게 무가 두꺼워지고 길어지고 그러는지 정말 신기해 죽겠어.



10월 23일

작은 씨앗이 무거운 질량의 무가 된다는 게,

정말이지 눈앞에서 기적을 보는 것만 같다.



10월 26일

여전히 날이 더워서 거의 매일 물 주러 밭에 나간다.



무청 나물이 맛있다고 그래서 몇 줄기 잘라왔다.



삶아서



무청을 볶았는데 조금 더 삶았어야 했나...

양념 맛으로 열심히 먹었다. (다음에 또 먹을 거 같진 않다)



11월 6일

날이 급작 추워져서 마지막이다 하면서 상추를 따왔다.



11월 7일

배추가 정말 엄청 자랐어!

우리 밭의 배추가 젤 큰 거 같아.



무 하나는 일단 뽑아보자고 뽑았는데 이게 뭐지. ㅎㅎ

땅속으로 들어간 부분이 거의 없잖아!

다른 무도 다 이럴까.



그래도 통통하고 귀엽고, 맛도 괜찮다.



11월 9일

드디어 배추 첫 수확!

이렇게 잘 자랐다.

김장은 배추 절이는 게 너무 어렵고 그럴 통도 없고 그래서 포기했다.

그냥 한 통씩 뽑아서 이래저래 먹기로 했다.

이웃에도 서너 통 뽑아서 잡수시라고 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겉 잎은 떼버리고.



곧 영하로 떨어져서 남은 무 네 개도 수확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뽑아본 터라 별 기대 없이 흔들었더니 이번 건 지난번과 느낌이 다르다!



우와! 이건 땅속으로도 좀 자라있어!!!!!



이만하다고!!!!!!!



구석에 있던 애는 좀 작지만, 큰 무는 정말 실하다.

가장 큰 무 하나는 이웃 드렸다.



나는 이걸로 깍두기를 담가보겠소.



무가 맵지도 않고 물기도 많아서 아삭하고 맛있다.



겉잎에는 구멍이 많지만, 속은 이렇게나 알차다!!!



밀푀유나베도 만들었다.

배추 한 통을 다 쓴 건데, 이 많은 세 식구가 다 먹었다.

아이가 엄청 잘 먹어서, 다음 주 금요일에도 배추 하나 뽑아서 해먹기로!



11월 12일

이번에는 겉절이를 해 먹을까 하고 또 배추 한 통을 뽑아왔다.

겉잎은 된장국 끓이려고 따로 두고, 속으로만 겉절이.

노란 속만 남긴 도 무게가 1kg이나 된다.



겉절이랑 같이 먹으려고 고구마도 구웠다.

남편이랑 배추 반 통을 먹어치웠다.

배추가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가을 농사라는 게 정말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어떻게 두 달 만에 무와 배추가 이렇게나 자라는지!

가을 농사는 봄 농사와 달리 덩치 큰 작물이 쑥쑥 자라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수확하는 것도 봄의 채소와 달리 무게가 상당한 것들을 수확하니까 내가 대단한 농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자연은 정말 대단하다.

봄부터 여름 내내 온갖 채소 다 길러 먹은 땅에 다시 씨를 뿌리면 두 달 만에 무와 배추와 파를 김장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키워낸다.  


올해가 우리 집의 첫 텃밭 농사였는데 농작물 자라는 모습 보는 기쁨이 대단했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쑥쑥 자란 덕분에(화분하고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게 성장한다) 가장 많은 채소를 먹은 한 해가 되었다.

3월부터 11월까지 자연이 키워준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텃밭농사 석 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