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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06. 2020

글쓰기에 대하여 1

실망 금지 - 고치면 나아진다고!

최근에 몇 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다가 급기야 남편에게 이런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오빠, 내 글 다 너무 바보 같아!!!" 

나의 푸념에 남편은 

"계속 수정해 봐. 괜찮아지겠지."라고 하면서, 머리도 식힐 겸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며칠에 걸쳐 읽었다. 

거기서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초고 역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쓴 초고를 보면 내 머리통은 무슨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려면 초고를 써야만 하는데, 초고를 쓰면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 이게 창작의 딜레마다. 어쨌거나 초고는 내 일생일대의 약점에 해당한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아아... 그렇게나 많은 책을 내는 글쓰기의 달인, 김연수 작가도 본인의 초고를 보면 미치려고 하다니.. (하지만 그 미치는 기준이 상당히 다르겠지.)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정말 더 이상은 못한다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문장을 고치고 나서야 사람들 앞에 그 문장을 내보일 수 있다는 거다.


십수 년 전 어디에선가 조정래 작가가,

"거의 모든 문장을 최소 20번은 고친다고 보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와.... 조정래 같은 작가가 모든 문장을 거의 20번을 손 보았다니!!! 그럼 저 엄청난 양의 소설을 20번이나 다시 쓴 거나 마찬가지잖아.'


예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에서도 (지금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구절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거의 다 완성한 책 내용을 처음으로 부인에게 보여주고, 신랄한 비판을 받은 후에 다시 고쳐가며 쓰기를 아주 여러 번(도저히 못할 때까지) 반복한다고 썼다.


모든 작가들이 정말 신물이 날 때까지 자신의 유려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실제로 쓰러져 거품을 물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야만 그나마 창피하지 않은 글이 나온다는 소린데....




글쓰기란 것은 타고나야 하는 것인지, 훈련만 해도 되는 것인지, 두 가지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독을 하면 되는 것인지, 많이 써보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과 신이 내린 재능까지 다 갖추어져야 하는 것인지.....


유시민 작가는 다독과 다작으로 좋아질 수 있다고 했고,

강원국 작가는 유시민은 재능이 뛰어나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고,

김연수 작가는 (물론 다독과 다작은 기본이고) 쓰려는 것에 대해 잘 알아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를 했다.


또 언젠가 공지영 작가는 이런 얘기를 했다. 

소설을 쓰기 전에 스토리 구상을 해놓았으면 그에 관련된 분야(주제, 주인공의 직업, 어떤 사건 등등, 여하튼 모든 것)의 책을 잔뜩 사서(약 300만 원어치쯤이라고 했던 것 같다) 본다는 거였다. 


'맙소사! 그래야 하는 거였어?' 


김연수 작가도 보통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 가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그 관련 서적을 이고 지고 가는 게 정말 일이라고 했다.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80권 정도를 추려서 들고 가서 읽어보고 글을 쓰고, 다시 책을 계속 바꿔가면서 읽어가며 쓰고 그런다고...


나는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기 전에 직접 혹은 여러 사람을 고용해서 '취재'라는 걸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소설가와 취재라는 건 너무 매치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소설가라고 하면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골방에 틀어박혀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도록 머리를 쥐어짜며 스토리를 만들고 써야 마땅한 것일진대, 취재라니!!!!!




'하버드大 글쓰기 프로그램 20년간 이끈 낸시 소머스 교수의 글'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 내용 중,

[서울대가 지난 2~3월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253명을 대상으로 글쓰기 능력 평가를 실시한 결과 98명(38.7%)이 100점 만점에 70점 미만을 받았다. 전체 응시자의 평균 점수는 C학점 수준인 73.7점이었다. 시험을 주관한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응시자 65명(25%)은 서울대의 글쓰기 정규 과목을 수강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다"라고 평가했다. 논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쓰거나, 근거 없이 주장하고, 비문(非文)이 많았다는 것이다.

- 중략 -

그가 제시한 글쓰기 비법 가운데 한 가지는 "짧은 글이라도 매일 써보라"는 것이다.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글을 써야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되지요. 어릴 때부터 짧게라도 꾸준한 읽기와 쓰기를 해온 학생이 대학에서도 글을 잘 쓰더군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5/2017060500092.html


내용인즉슨, 다들 너무 글쓰기를 못 한다는 것이다. 하버드에서는 글쓰기 특강을 꾸준히 하고 있고, 그 결과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대단히 향상되었더라는 기사였는데, 최근에 하버드를 졸업한 40대에게 가장 유용했던 과목을 조사했다는 글이 또 눈에 띄었다. 1위는 글쓰기 수업이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 나는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한글 파일 216쪽이 되는 글을 11번의 퇴고를 거치면서(이 퇴고의 작업만 8개월이 걸렸다) 글과 스토리를 다듬고, 양도 182쪽으로 줄였다. 


김연수 작가는 책 소설가의 일에서 '토고'라는 표현을 해 놓았는데(토가 나오는 초고라는 뜻이다), 그 때문일까 나는 내 소설의 초고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실제로 토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수정을 거치면서, 수정을 거칠수록 점점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는 퇴고의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거다. 


고치면 나아진다. 

고칠수록 좋아진다. 

그러니까 실망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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