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Aug 07. 2020

글쓰기에 대하여 3

'어떻게든 출간이라도'의 집착

이번에 인용할 책은 '쓰기의 감각(앤 라모트)'이다.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다만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출판이라는 게 생각만큼 화려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일러둔다. 창작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가르쳐 주며, 또 수많은 놀라움을 준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카페인을 좋아하므로 다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다도 그 자체라는 것을 발견할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글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큰 보상을 돌려준다."


사실 글 쓰는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출간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출간 붐이 분 적이 또 있을까. 출판이라는 게 생각만큼 화려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저것은 출간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고, 내 이름으로 책 한번 내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처럼 되어있다. 




어떤 분이 책을 내고 싶다며 내게 몇 가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책을 여러 번 출간했으니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겨 건너 건너 아는 분이 물어오셨다. 

본인은 이러이러한 약간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그것을 써서 출간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그 경험에 대해 쓸 글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 목차도 정하고, 각각의 목차에 맞게 글을 써서 책 한 권 분량의 양이 될 정도가 되면 출판사에 보내면 된다고, 그런 것을 '투고한다'라고 하는데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시라고 알려드렸다. 그 원고를 마음에 들어하는 출판사가 연락을 해오면 책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는 거라고 알려드렸다. 


나의 얘기를 듣더니 그럼 한 권 분량의 글을 다 미리 써야만 하는 거냐고 약간 놀라며, 그렇다면 글을 (그렇게나 잔뜩) 썼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일단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쓸 예정인데 책을 내줄 수 있는지를 여러 출판사에 문의해보고 오케이 하는 곳이 있으면 글을 쓰면 안 되냐고 다시 물어왔다. (오, 그럴 수만 있다면요!!!!!)

글을 쓰기 전에 계약하는 건 정말 대 작가들 뿐이고, 기존 작가들도 모두 분량의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야 출판사가 글을 보고 판단한다고 답변을 드렸다.(이건 솔직히 내 생각이었다. 유명하신 작가님들은 어떻게 계약하고 작업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럼 강의(물론 수강료가 비싸다)를 들으면 출판해 준다는 곳들이 많은데 그것은 어떠냐고 다시 물었고, 나는 그것이 본인에게 정말 의미가 있겠는지 심사숙고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까 출판만이 목적이지 글이 목적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실로 많은 사람들이 '출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글을 쓰느라 애쓰기는 싫음' 상태에 놓여있다.  

물론 출간의 기회 따위 도무지 없는 마당에 홀로 부단히 글을 쓰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확신 - 좋아요 버튼이나 댓글만으로도 작가들은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정유정 작가도 등단 전에 6년의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글을 쓰고 공부를 하며 무지막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니.... (그 노력을 일일이 쓸 수도 없다.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랬을 것이다.) 날로 먹으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미 능력을 갖춘 많은 작가들조차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대해 알고 나면 '어떻게든 출간이라도'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벗어났다.)




쓰기의 감각 중, 

"활자로 인쇄된 내 글을 바라볼 때의 흥분이 어땠겠는가. 그것은 일종의 공신력 있는 검증 수단과 같았다. ‘나의 글이 인쇄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러한 자극이 어떠한 것인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기 이름이 책에 인쇄된 것을 본다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체험이다."


책 속에 인쇄되어 있는 내 글은 내 글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것을 썼다고? (자뻑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의 놀람) 

수없이 읽어보고 고쳐서 이제는 외울법한 글이지만 활자화된 내 글은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한 느낌이고 말 그대로 놀라운 체험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자신이 없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되고 말이다. 그들의 속마음이 너무 궁금하다. 혹평이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그 두려움에 맞서서 인터넷 서점과 블로그에 올려진 리뷰를 찾아 읽으며 평정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말을 써주는 경향이 있으니까. (성선설) 


날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내 글을 읽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은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어도 내 앞에서는 그럴 순 없을 테니까. 나는 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이 있었다. 다만 한 지인으로부터는 나중에서야 속마음을 들었다. 

"아는 사람이 쓴 글이라 그런지 사실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 쉽게 읽히는 글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누구나 이 정도는 쓸 수 있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나중에 세종 도서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지. 대단한 작가도 아닌, 내가 아는 사람의 글은 보통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아. 내가 그런 선입견을 가진 채로 읽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어.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깜짝 놀란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않을까."

오히려 아는 사람의 글은 그래서 더 폄하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조차 그랬다. 

나의 글은 이미 출판사에서 선택받아 출판사가 공을 들이고 돈을 들여 책을 내주었다는 공신력이 있음에도 맘껏 자랑스러워하질 못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런 마음이었다. 아마도 나에게는 조금 더 '공신력 있는 검증 수단'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의 그 간절한 바람 덕이었는지, 3차에 걸친 심사 끝에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지금은 맘껏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쓰기의 감각 중, 

"정식 출간을 하기 몇 달 전 어느 날, 당신은 한 묶음의 교정쇄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은, 당신의 원고가 인쇄된 종이책 형태의 가제본이다. 나는 항상 이 지점에서 극도의 안도감을 느끼는데, 왜냐하면 출판사가 이제 출판을 취소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교정쇄를 세 번이나 네 번가량 읽을 무렵, 당신은 그 책 전체에서 신선하거나 통찰력이 반짝인다거나 인용할 만한 구절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섯 번째 읽을 무렵, 당신은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당신에게 그다지 이롭지 않다고 확신하게 된다."


너무나도 잘 표현한 구절이라서 가져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실제로 웃었다. 

정말이지 교정쇄를 읽으면 읽을수록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부끄러움과 자신 없음이 증폭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의 절반가량은 필사적으로 출간을 원한다. 출판과 정신 건강의 관계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영화 「쿨러닝」의 한마디 대사에 압축되어 있다. '너희가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얻는다 해도 만족할 수 없어.'"


다른 작가들의 어마어마한 절대적인 노력과 태고적부터 들여온 시간 투자를 안 이후로, 나도 쓰는 것에 더 만족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매일 하는 것이 직업이라면 매일 쓰는 우리는 작가다. 

매일 쓰는 우리는 조금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 대하여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