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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an 04. 2021

겨울철 최고 반찬 - 무나물

고기 없이도 맛있는 들기름 뭇국은 덤!

겨울 무는 보약이라는 말은 찬바람만 불면 여기저기서 보고 듣는 소리다. 

겨울 무는 달디단데도 인삼이나 마찬가지라니, 더 열심히 먹을밖에. 


무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재료로 주로 국물을 내는 용도로 많이 쓴다. 무를 넣고 끓이면 달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내주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도 주로 국물 요리나 조림에 사용한다. 


소고기 뭇국, 어묵탕, 매운탕, 갈비찜, 생선조림, 무생채, 무 피클까지.

이런 음식으로 무를 돌려 쓰다가, 찬바람이 불면 본격 무의 시대가 개막된다!


추운 겨울은 나의 소울 푸드, 무나물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무나물의 준비물은 간단하다.

무, 들기름, 소금(나는 연두를 사용한다. 연두해요~의 그 연두다. 연두를 이용하면 채소요리나 국물요리가 훨씬 맛있어진다.), 다진 마늘.

(맛의 비결은 들기름이다. 반드시 들기름.)


만드는 방법은 더 간단하다. 

깨끗하게 씻은 무를 반으로 딱 자른 다음에 푸른 쪽을 쓸까, 하얀 쪽을 쓸까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다. 나머지 반쪽은 내일 바로 먹을 거니까. 


채칼도 있지만 그냥 칼로 써는 편이 나는 더 간단하고 쉽다. 

동그란 단면을 0.7센티 간격으로 착착 썬다. 

무가 얼마나 맛있을라고 그러는지 썰어낸 무 단면에 물기가 자작하다. 

동그랗고 납작하게 썰어진 무를 다시 잘 포개 놓고 착착 썰기 시작하면 10분도 안 되어서 금세 무채가 한가득 완성된다. 


이걸로 할 일은 끝났다. 


뚜껑이 있는 솥에다 무를 넣고 들기름을 한 바퀴 휘이~ 둘러 주고, 깍둑썰기 해놓은 다진 마늘을 냉동실에서 꺼내어 넣고 연두를 조심스레 쪼로록 붓고 불을 켠다. 뚜껑을 닫는다. 


5분쯤 후에 뚜껑을 열고 한번 뒤적여 준다. 무에서 나온 수분과 들기름이 어우러져 벌써 자작자작한 고소한 국물이 생기고 있다. 

다시 뚜껑을 덮는다. 5분 후에 뚜껑을 열고 다시 한번 뒤적인다. 

무를 몇 개 집어서 간을 본다. 필요에 따라 연두(소금)나 들기름을 조금 더 첨한다.

우리 집에서는 10분이면 무의 설컹거림 없이 고루 잘 익는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둔 채로 밥을 푸고 다른 반찬들을 꺼내고(나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지만!) 식사 준비를 한다.


무채와 들기름, 연두, 다진 마늘을 다 같이 넣고 불을 올리고 뚜껑을 덮는다.


원래 깨도 뿌리지 않지만 사진을 찍자고 깨도 조금 뿌렸다. 아래 자작하게 보이는 저 국물이 최고다!


내가 먹을 무나물은 따로 준비한다. 왜냐하면 나는 밥을 넣어서 비벼 먹을 거니까. 


맘 같아서는 항상 무나물에 비벼서 밥 두 그릇을 먹고 싶지만 참아내는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나물을 좋아했다. 

엄마가 종종 해주시던 매콤 새콤한 무생채도 좋아했지만, 들기름에 볶아낸 따뜻한 무나물에는 사족을 못썼다. 

잠이 덜 깬 이른 아침에는 대체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도, 밥상에 무나물이 있는 날에는 5분 만에 한 그릇을 후딱 먹었다. 


엄마한테도 그래서 무나물은 효자 반찬이었을 것이다. 

도시락까지 싸줘야 하는 그 바쁜 아침에 금방 만들 수 있는 반찬. 값도 싸고 말이다.

밥 한 그릇을 거뜬하게 먹고 뜨뜻한 속으로 아직 어둑한 겨울 아침에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하셨을 것이다. 


자식이 아침을 잘 먹고 등교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엄마의 마음 온도가 종일토록 다르다는 걸 지금의 나는 잘 안다. 


깜깜한 추운 겨울 아침에 교복 치마에 커피색 스타킹으로 등교하는 것만 봐도 안쓰러웠을 텐데, 늦었다고 빈속으로 나가기라도 해 봐. (물론 그런 날들이 숱했지만) 아침부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동동거리면서 차려놓은 밥상에서 손도 대지 않은 다 식은 밥과 반찬으로 뒤늦게 홀로 아침을 드시고 치우시면서 엄마는 퍽 속이 상하셨겠지,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때처럼 지금도 무나물에 밥을 슥슥 비벼먹는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맛있다며 감탄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먹는다는 거다. 

그때도 엄마 앞에서 감탄의 말을 쏟아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도 이제야 한다.


무나물 반찬을 해놓은 날 내 아이에게 몇 번이나 무나물에 밥을 비벼먹고 등교했던 겨울 아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평소 반찬에 밥을 비벼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너도 한입 비벼줄까?"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한다. 

작은 종지를 가져와 아이의 밥그릇에서 밥 두 숟갈을 덜고, 무나물과 국물을 자작하게 넣고 비벼서 입에 넣어준다. 

"맛있지? 엄청나게 맛있지?" 

강요하듯 묻는 내 말에 아이도 맛있다고 연신 받아먹는다. 


엄마가 해주셨던 맛있는 반찬을 나도 아이에게 해주고, 엄마가 얼마나 이 반찬을 좋아했는지 얘기해주면 아이는 훨씬 더 맛있게 먹는다. 

아이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음식으로도 엄마를 기억할 것이다. 




들기름 무나물의 자매품으로 뭇국이 있다. 

우리가 아는 소고기 뭇국이 아니고 무나물에 물만 넣으면 되는 뭇국인데, 이게 또 겨울에 얼마나 별미인지 모른다. 


과정은 위의 무나물과 동일.


무의 3분의 2를 착착 썰어서 국 끓이는 큰 솥에 그득 넣고, 다진 마늘도 세 블록, 연두도 조금 더, 들기름도 조금 더 해서 뚜껑을 닫아 익힌다. 


맛있는 무나물이 되길 기다리면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무가 얼추 볶아졌으면 끓여놓은 물을 붓는다. (나는 이 시점에서 무나물로 먹을 분량을 한 그릇 덜어놓은 다음에 물을 붓는다. 뭇국은 뭇국이고 무나물은 무나물이니까. 일석이조)


물을 부었으니 간을 다시 맞추고,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는다. (나는 뭇국에는 항상 고춧가루를 조금 넣는다.) 마지막으로 대파를 썰어 넣으면 끝!!!!!

 

고춧가루를 조금 첨한 들기름 뭇국. 뒤로 보이는 것은 한 그릇 미리 덜어놓은 무나물이다.


무나물은 무나물대로 비벼먹고, 뜨끈한 뭇국에는 밥을 푹 떠 넣고 푹푹 떠먹으면 겨울에도 땀이 절로 흐른다.


겨울 아침에 뜨끈한 들기름 뭇국에 밥 한 그릇이면 종일 따뜻하다. 


도토리묵을 찰랑찰랑하게 쑤어 들기름 뭇국에 넣어서 한 끼를 대신할 때도 있다. 


많이 먹어도 소화도 잘 되는 무나물과 뭇국은 비건 음식으로도 최고다. 

겨울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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