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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an 25. 2021

자연산 파래를 채취하다.

파래를 채취하고 말려서 먹기까지

지금 쓰는 이야기는 2019년 2월 22일의 일로 여수 여행 중에 경험한 것이다. 


곧 6학년이 될 아이의 봄방학 기간이었다. 

4일 동안 광양을 거쳐 여수를 다녀오는 짧은 여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람이 없는 바닷가 근처를 걷고 있는데 저쪽 돌무더기 쪽에서 빨간 옷을 입을 아주머니 두 분이 분주히 다니시며 뭔가 하시는 것 같았다.

바위에 붙은 소라라도 떼고 계시는 건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저 바다로 내려가 보자고 했다.


아주머니들이 계신 곳 가까이 가려면 드리워진 줄을 잡고 방파제를 올라가야 했다.


초록색 수초로 뒤덮인 바위가 그득한 해변이다. 밟으면 미끄러울 것 같아 조심해야 했다.


아이에게 이 바위들 전부 겨울왕국에 나오는 트롤 아니냐니까 

아이는 정말 그런 것 아니냐면서 밟지를 못했다. 



차마 수초들을 밟지는 못하고 살펴봤다. 가만 보니까 작은 고동 같은 것들이 있긴 했다. 그렇다고 이 작은 것들을 떼시는 것 같진 않은데.... 


아주머니들은 뭔가 묵직한 비닐을 들고 자리를 옮기셨다. 


너무 궁금해서 아주머니들 근처로 갔다. 


"안녕하세요. 뭘 하시는지 너무 궁금해서 여쭤보려고 왔어요."

"파래 뜯는 건디요. 근데 어서 오셨소?"

"서울이요. 그럼 이게 다 파래예요? 우리가 먹는 그 파래예요?"


놀라는 내 목소리에 아주머니 두 분이 껄껄 웃으셨다. 


"이게 다 그 파래요. 엊그저께도 따서 무쳐먹었더니 겁나 달드만요. 댁에도 얼른 파래 좀 뜯어가요."

"지금 이 널린 거를 뜯어가서 먹으면 된다는 거예요?"


나는 다시 확인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해보시더니 


"아~ 이것을 말려야 하는데.... 아파트에 사씨요? 그럼 말릴 데가 없을 텐데..." 

"아니에요. 주택이에요. 저희 말릴 곳이 있어요. 옥상이 있어요. 그럼 뜯어가서 말리면 되는 거예요?"

"그럼 되았소. 비닐 없소? 비닐을 주까요?"


하고 주머니에서 깜장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어 탁탁 털어서 건네주셨다. 

그러고 나서는 바위에 붙은 파래를 뜯는 시범을 보여주신다.


"요래 요래 뜯어가서 모래가 있을지 모릉께 민물에 몇 번 잘 씻어서 말리씨오. 반찬 몇 번 해 먹을 수 있응께."

"우와~ 감사합니다. 이런 걸 처음 봤어요. 너무 기대가 돼요!"



그래서 우리는 파래를 뜯기 시작했다. 


바닷물에다 손을 씻고 아이와 함께 파래를 뜯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렇게 재미있는 게 다 있냐면서 완전 열광을 했다.

"엄마, 우리 지금부터 밤까지 여기 파래를 다 뜯자."


아주머니들은 우리를 몇 번 돌아보시면서

"파래 밟으면 미끄러웅께 조심하씨오. 비닐 큰 거 더 주까요?" 하셨다. 

비닐은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자 아이가 나에게 속삭였다. 

"엄마, 무조건 비닐을 더 받아야지. 지금 이거 하나로는 어림도 없다구!"


아이는 이 비닐봉지의 반의 반도 안 채웠는데, 이 많은 파래를 다 어쩔 거냐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랑 남편은 뭔가를 채취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이까지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받은 게 틀림없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는 파래 뜯기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며칠만 지나도 이 파래가 전부 다 녹을 거라고 하셨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 녹아 없어져버린다고, 파래는 차가운 물에서만 산다면서.... 

아까워..... 


아주머니는 걱정이 되시는지 세 번이나 모래를 잘 헹궈 먹으라고 하셨다.


비닐봉지가 거의 다 찼다. 아이 말대로 한 봉지 더 받았어야 하는 거였나...


파래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많고, 뜯는 것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다!


파래로 거의 다 찬 비닐봉지를 꾹꾹 누르던 아이는, 아주머니들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비닐봉지를 더 얻어오라고 채근했다. 

"아니야, 우리 이걸로 일 년 먹어." (실제로 일 년 먹었다.)



싱싱한 파래가 이만큼!!!!!!!


저녁에 숙소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다음날 서울에 가지고 왔다. 

냉장고에 넣은 걸 까맣게 잊고 숙소를 정리하고 나서려는 찰나였다. 

신발을 신던 나에게 아이가 "엄마! 파래!!!!!!!!!!!!!!!!!!!"라고 소리를 질러서 겨우 챙겨 왔지 뭔가.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 파래를 놓고 왔으면 어쩔 뻔했냐는 소리를 스무 번도 더 들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차 안에서는 바다 향이 났다. 


비닐봉지에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아 가져왔는지, 파래가 끝도 없이 나왔다. 

헹구는데 한도 끝도 없어서 두 봉지를 캐 왔으면 큰일 났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 이제 말리는 과정이 남았다. 

굉장히 고심하다가 옥상에 줄을 걸었다.


이 파래들을 어떻게 널어 말릴 것인가 고심, 또 고심하다가... 옥상에 줄을 걸기로 했다.

물에서 쪽~ 건져놓은 파래를 다시 물에 넣고 조금씩 들어 올려 줄에 걸치는 방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파래를 널면서 줄 건들지 말라고, 널어놓은 파래가 바닥에 떨어지면 끝장난다고 그러면서 널었다. 

생각보다 잘 널렸다. 바다향기를 온 동네에 풍기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파래를 널었다. 


빼곡하게 널어놓은 파래!


바람이 좀 부는 날이라 걱정하면서 수시로 옥상에 올라왔다. 

물기가 얼추 빠지자 2월의 햇빛에 파래가 꾸덕꾸덕하게 마르기 시작했고, 더 선명한 파래 색이 되었다. 



순도 100% 자연산 파래


이게 될까 싶었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것 하나 없이 이 상태 그대로 잘 말랐다.

옥상 문만 열어도 여수의 바다 냄새가 파도처럼 다가왔다. 



파래전!!!!!!!!!


당분간 먹을 파래는 말리지 않고 남겨놓았다. 남겨놓은 파래도 제법 되었다. 

일단 파래전을 부쳤다. 부침가루 반죽에 파래만 넣어 부치면 된다. 

아이는 나를 닮아 전을 무척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전을 먹으며 자랐는데, 매생이 전도 무척 좋아하며 잘 먹었기 때문에 파래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파래전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이 가냐고 한껏 기대감을 심어주며 부쳤다. 아이는 발을 동동거리면서 식탁에서 떠나지 못했다. 

바다 냄새에 고소한 냄새가 섞였다.



앞으로 전은 무조건 파래전이라는 아이


맛있다는 감탄을 워낙 잘하는 아이이기도 하지만, 파래전은 전 중에 최고라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파래 함량이 매우 높은 파래전


우리가 직접 채취한 파래라서 그런지, 싱싱해서 그런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건가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파래의 색감!!!!


밤에 줄 채로 걷어놓은 파래를 (파래가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널었다. 

전날보다 해가 훨씬 더 좋았다. 

바싹 말려 물기 하나 없는데도 근처에서는 향긋한 파래 향이 진동했다. 


워낙에 나는 김 종류를 좋아한다. 반찬은 물론이고 간식으로도 날김을 곧잘 먹는다. 

어렸을 때 엄마가 파래김을 구워주시면(항상 집에서 기름 바르고 소금을 뿌려서 김을 구워 주셨다), 김에 조금씩 붙어있는 초록색 파래를 떼서 혀 끝에 올려놓고 싸한 향을 즐기곤 했었다.

근데 이게 다 그 파래라니!!!!



바작바작 마른 파래를 걷어왔다.


대용량 지퍼백에 나누어 담고 냉동실로!


망에도 얇게 뿌려서 말렸더니 이렇게 누룽지처럼 말랐다. 


김에 비하면 두껍지만 그래도 잘라서 프라이팬이 살짝 구운 후,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 먹었다. 

파래로만 이루어진 순도 100% 파래김!!!! 

들기름 간장에 찍어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파래무침



건파래를 살짝 불려서 무침도 해 먹었다. 

아이는 또 감탄을 늘어놓으면서 매일 반찬으로 이 파래무침을 먹고 싶다고 야단이었다. 

자기가 뜯어온 파래라서 그런지 소금에만 버무려 줘도 좋다고 먹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냉동실에 그득한 말려놓은 파래를 야금야금 꺼내어서 파래전을 해 먹었다. 



감자전을 먹기로 한 날에도 파래전은 꼭 곁들여야 하고, 툭하면 파래전을 해달래서 일년 간 별미처럼 먹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이제 여수 하면 떠오르는 건 동백도 아니고 밤바다도 아니다. 

여수 하면 파래다.

이름도 어쩜 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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