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주말에 부침개를 부치셨다.
아빠는 1941년 생으로, 넷째인 고모 한 분을 뺀 여섯이 남자인 칠남매 중에 셋째다.
그 시대의 남자 치고, 어쩌면 요즘 시대의 남자들 중에서도 집안일을 잘하는 타입이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하시고 청소도 물론이다.
친정에 가도 여전히 나에게 설거지 한 번을 시키지 않으신다.
6년 전 엄마의 암투병 때도(지금은 다 나으셨다), 자주 들러볼 수 없는 딸 둘을 대신해 엄마의 간병과 식사를 전부 다 하셨다.
중 고등학교 때, 엄마가 큰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겨서 며칠 집을 비우면, 아빠는 언니와 나의 도시락을 차질 없이 싸주셨고, 매일 벗어놓는 교복도 밤마다 손빨래를 해서 다려서 방문에 걸어 놓으셨다.
술을 꽤 드셔서 종종 엄마의 속을 뒤집으셨고, 어떤 부분은 성격적으로 가족을 지치게 만드셨지만 - 이를 테면 남들을 지나치게 배려해서 가족이 희생을 해야 한다거나, 약속된 시간보다 지나치게 일찍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대입 학력고사 날도 아빠의 '차 막힐지도 몰라 염려증'에 지나치게 일찍 가서 고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차 안에서 세 시간이나 대기하면서 계속 졸았다.) - 굳이 어느 쪽이냐고 따지면 그래도 가정적인 편에 조금 기울지 않나 생각한다.
집 안팎으로 고장 난 게 있으면 미루는 법이 없고, 남의 집에 가서도 뭔가 작동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거기서 그걸 고쳐줘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라 우리의 속을 터지게 만드셨다.
주말에는 종종 아빠의 특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돼지 부속을 볶아 주거나, 생 간을 무쳐 주거나, 숯불에 생선을 구워 준다거나, 떡을 튀겨 준다거나, 순두부를 만들거나 등등.
그중에 내가 퍽 좋아한 건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였다.
호박을 부치거나, 배추를 부치거나, 오징어 부침개를 할 때도 많았고 그것들도 무지 좋아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침개는 단연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다.
결혼 전까지 나는 밥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계속하게 될 걸 미리 뭐하러 하냐는 식이어서 미리 뭘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그때까지 설거지도 한 번 시키지 않으셨으니까.
그래도 그간 눈여겨보던 것들이 있었기에 요리를 나쁘지 않게 했다. 한 마디로 감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먹어본 음식의 맛을 떠올리면서 그 맛을 찾아갔다.
내가 아마 조금이라도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면 요리에 꽤 재능을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결혼 후에도 아빠의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기억을 떠올리면서 만들었다. 아마 처음 한 번은 전화를 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남편은 뭐든 잘 먹는 타입이라서 내가 만든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를 잘 먹었고, 우리 둘은 종종 주말마다 감자 부침개를 해 먹었다. 아이도 부침개를 무척 좋아하는 식성이라 우리 집은 각종 부침개를 자주 식탁에 올렸다.
너무너무 쉽고 간편하지만 맛은 최고인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
영양적으로도 너무 훌륭한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를 부쳐보자.
필수 재료
돼지고기 다짐육 (또는 삼겹살을 작게 썰어 넣어도 좋다.)
감자
양파
부침가루(밀가루)
선택 재료
당근(냉장고에 있는 채소나 버섯)
달걀
들어가는 채소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데 나는 당근 넣는 걸 좋아한다. 당근을 함께 갈면 색깔이 예쁘고, 맛도 괜찮기 때문이다.
감자 때문에 갈아두면 색이 좀 변하는데, 당근을 넣으면 색이 고와서 당근을 선호한다. 당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당근이 있는 날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냉장고를 보고 대파나 부추를 다져 넣을 때도 있고, 브로콜리를 다져 넣을 때도 있다. 버섯을 다져 넣기도 하고,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도 별미!!
첫판은 시식용. 싱거우면 소금을 좀 더 넣거나, 짜면 달걀 하나를 더 풀던가 부침가루를 더 넣거나, 감자 하나를 더 갈던가 여러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
부침개가 너무 힘이 없으면 부침가루(밀가루)를 더 넣으면 되고, 너무 단단하면 물을 더 넣거나 감자 하나를 갈아 넣거나 하면 된다.
마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어떻게든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강박에 내내 시달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까지 고기 먹이기가 꽤 힘들었다. 기름이 대부분을 차치하게 잘라준 삼겹살이 아니면 살코기는 잘 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게 잘라줘도 꼭꼭 씹어 단단해진 고기를 잘 삼키지를 못했다.
그 대안이 부침개였다. 마침 부침개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돼지고기 감자전이나 돼지고기 녹두전, 소고기 간 전 같은 것들이 효자노릇을 했다.
이때 적어놓은 일기를 보면,
"고기를 잘 못 씹어 삼키는 아이에게 돼지고기를 실컷 먹일 수 있는 건 돼지고기 감자 부침개, 소고기를 실컷 먹일 수 있는 건 다진 소고기를 버터에 볶아서 밥에 비벼주는 게 유일한 방법" 이라고 써놓았다.
https://brunch.co.kr/@zoo430/74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아이도 좋아하는 건 정말 행운이다.
가족에게 음식 궁합이란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음식에 까탈스럽지 않은 남편, 내 식성을 꼭 닮은 아이, 해주는 음식에 감탄을 쏟아놓는 성격 같은 건 음식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천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