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 라이프, 내일은 어떨까
“너는 아직도 아이 생각 없는 거지?”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회사 선후배들과의 술자리를 가졌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선후배라 허물없는 대화가 오갔다. 근황을 묻고 술잔이 오가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의 딩크 선언까지 흘러온 것이다.
“그럼요, 저는 지금이 딱 좋은데요? 굳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친한 선배들이지만 역시나 익숙한 반응이 돌아왔다. 내가 수없이 들어봤던 잔소리들.
“나도 오 년 전에 딱 그랬지. 나도 그땐 좋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이를 낳아보잖아? 생각하는 게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이번에도 익숙하게 받아넘겼다.
"아이고,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들. 옛날에 일할 때도 그렇게 잔소리를 하시더니, 아직도 그러시네."
그리고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후배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여자 친구랑은 잘 지내지? 결혼 계획은 없어?”
“하고 싶을 때도 있긴 한데, 요즘 집 구하기도 너무 힘든 것 같고. 결혼은 엄두가 안 나요. 그냥 지금처럼 연애하면서 지내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나는 후배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무심코 한 마디 보탰다.
“그래도 결혼은 좋은 것 같은데. 연애만 할 땐 못 느꼈던 좋은 점들이 확실히 있어. 한 번 고민해봐.”
그 말을 꺼내고선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너희는 아직도 아이 생각이 없는 거니?”
지난 명절 처가에 갔을 때였다. 아내는 장인, 장모님께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한 터라 더 이상 아이 문제로 잔소리를 하시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장모님은 못내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신다. 그날도 늦은 밤 장모님과 함께 TV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으시던 중이었다. 장모님의 물음에 아내는 완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당연히 없지.”
장모님은 애써 서운함을 거두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이고 됐다, 그래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누구네 딸은 사십이 다 됐는데 결혼도 안 하고 여태 혼자 산다더라. 아주 그 엄마가 골치래, 힘들게 키워놨는데 시집도 안 가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 요즘은 혼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남편 있고 자식 있다고 다 행복한 거 아니야.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마!”
물론 난 장모님을 이해한다. 장모님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오셨을 테니까. 연애를 하면 그다음엔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그것도 둘은 낳아야 하고, 그 아이를 잘 키워서 또다시 결혼을, 아이를, 또 아이를. 그 시절 행복의 공식은 아주 단순하다. ‘1인 가족’ 보단 결혼을 한 ‘2인 가족’이 더 행복하다. 아이가 없는 ‘2인 가족’ 보단 아이가 있는 ‘3인 가족’이 행복하고, 완성된 행복은 ‘4인 가족’이 되는 것. 그런 행복의 수혜자가 다름 아닌 아내와 나다. 우리 둘 모두 ‘4인 가족’의 막내로 자라왔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더 이상 그 공식을 믿지 않는다. 가족수는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우린 행복한 ‘2인 가족’으로 살기로 다짐했다. 행복이란 꼭 무엇을 더 가져야만 오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고,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행복도 존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1인 가족’이든, ‘4인 가족’이든, 무엇을 가졌든 못 가졌든, 거기엔 그 나름의 행복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옳다. 그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다. 온 마음을 담아, 부디 모두가 그런 세계에서 지내기를 바란다.
장희원, <우리의 환대: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그런데 난 어쩌자고 후배에게 결혼의 행복을 강요한 걸까. 고작 ‘2인 가족’을 경험해봤다는 것만으로 결혼이 어떻고 행복이 어떻다니. 후배에게 나의 실언을 사과할 새도 없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4인 가족’의 가장인 선배와 ‘3인 가족’ 가장인 선배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야, 그래도 애한테 동생은 있어야지. 혼자 크면 얼마나 심심하겠냐?”
“아휴, 하나도 힘든데 둘을 어떻게 키워요. 지금이 딱 좋다니까요.”
“둘째는 또 생각보다 손이 덜 가요. 첫째보다 훨씬 금방 큰다니까?”
나는 어서 이 잔소리의 무한한 도돌이표를 끊어야만 했다.
“저기요, 거기 ‘4인 가족’ 홍보대사님. 벌써 열 시라고요. 이제 잔소리 그만 하시고 소중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