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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Aug 20. 2021

아내는 잘생긴 남자가 좋다고 했다

딩크 라이프, 내일은 어떨까

  어느 날 동네의 단골 요거트 가게를 다녀온 아내가 차문을 열며 말했다. 나는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여기 알바생 새로 뽑았네?"
  "아, 그 전에는 사장님 혼자 했었지?"
  "응. 근데 알바생 잘 생겼다. 요즘 어린애들은 다 잘 생겼나 봐."
  "맞아, 요즘 어린애들 다 잘 생기고 예쁘지. 음, 뭐라고? 요거트집 알바가 또 잘생겼다고?"


  그러고 보니, 아내가 자주 배달을 시키는 다른 요거트 전문점도 사장님이 잘생겼다고 했다. 가게 소식을 들으려고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는데, 팔로어가 많은 건 물론이고 사장님이 하는 라이브 방송은 거의 팬미팅을 방불케 한다고 했다. 사장님 생일엔 고객들이 케이크와 선물까지 보낸다나. 물론 아내는 사장님은 관심 없고 그 집 요거트가 맛있어서 자주 시키는 거라고 했다. 그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번 단골집도 알바가 잘 생겼다고? 요거트 만드는데 잘 생긴 얼굴이 필요하기라도 한 거야?


  맞다. 이건 순전한 질투다. 아내가 아이돌을 보며 덕질을 할 때면 아무 생각이 없지만, 주변에 있는, 혹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호감을 느낄 때, 나는 여지없이 질투를 느낀다. 이런 유치한 감정은 연애할 때가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아직도 여전하다. 농담처럼 아내에게 '너 얼굴 보고 나랑 결혼했잖아'라고 말하지만, 나는 슬픈 진실을 알고 있다. 아내는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나에겐 잘 생겼다고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가 놀라운 우연을 발견했다. 주인공의 나이는 책을 읽던 당시의 나와 같은 36세. 아내와의 나이 차이는 우리 부부와 똑같이 3살 차이, 결혼한지도 똑같이 6년째. 마치 내가 그 해에 이 책을 읽는 것이 운명으로 정해진 것처럼 모든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나가다 난 또 한 번 소름 끼치게 놀랐다. 주인공의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에게 이혼을 선언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는 고백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말이지, 옛날부터 핸섬한 사람한테 무척 약했어. 잘생긴 남자가 앞에 있으면 이성 같은 게 마비돼버려. 문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항할 수가 없어. 아무리 해도 안 고쳐져."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문학동네

 

  잘생긴 연하남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뭐지 이건? 내 인생에 찾아온 운명 같은 책이 던져주는 복선이란 이런 것인가? 다행히 그 해 우리 부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의 결말도, 우리의 결혼생활도 무탈했지만, 아내가 여전히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하긴 그렇다. 누군들 어리고, 잘 생긴 사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어리고 예쁜 여자 앞에서는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계속 늙어간다. 아무리 스스로를 가꿔도 젊음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나이듦의 매력도 물론 있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에 있어 젊음의 그것을 능가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아득해진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 해질 테고, 우리보다 매력적인 사람들이 사방에 넘쳐나겠지.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에 대한 매력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이따금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여자들에게서 '남편을 봐도 더 이상 설레지 않아요'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중략) '네가 설레지 않는 것처럼, 남편도 너를 보며 설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나는 다정하게 알려준다. 문제는 집 밖의 사람에게 설레게 되는 일이다.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토스트


  '안정'을 위해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난 말리고 싶다. 경제적 안정이나 환경적 안정감은 조금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의 안정, 사랑의 안정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안정적인 사랑이란 어찌 보면 무료함과 권태의 다른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정'과 함께하는 결혼도 나쁘지 않다. 조금은 질투심을 느끼고 아내의 남자들에 대해 불안해해도 될 것 같다. 그것들이 사랑에서 오는 감정이라면, 우리는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이니까. 비록 내가 잘 생겨서는 아닐지라도.


  요즘은 아내의 요거트 사랑이 시들해졌다. 단골 요거트 가게에도 잘 가지 않는다. 잘생긴 알바생과 잘생긴 사장님은 여전히 거기 있지만,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요거트의 유행도, 하루키의 소설도 끝이 났지만, 우리의 불안정한 결혼 생활은 쭉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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