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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Aug 18. 2020

2인분의 고독

딩크 라이프, 정말 행복한지 궁금하시다면-

  또 야근이다. 이제는 딱히 놀랍거나 서러운 일도 아니다. 거의 한 달째 이러고 있으니까. 평소에도 나의 일은 잘 예상이 안 되는 편이다. 퇴근 시간 직전까지 아무 일이 없다가도 갑자기 일이 쏟아지며 야근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금요일 저녁에서야 주말 출근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 모든 건 내가 ‘을’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이 하라면 해야 하는 ‘을’의 일. 최근 한 달 간의 야근은 새로운 프로젝트 탓이다. 새로운 ‘갑’을 영입하기 위한 제안 프로젝트. 우리 팀은 한 달째 합숙하다시피 회의실에 틀어박혀 야근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엔 유난히 경조사가 많았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왔던 결혼식이 몰린 탓인지 매 주말마다 한 두 건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까운 지인 가족의 장례식도 있었다. 바쁘다고 모른 척할 사이는 아니어서 나는 주말에도 경조사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중엔 회사 일로, 주말엔 경조사로 나는 매일 녹초가 되곤 했다. 마침내 쌓여가던 화가 터지고야 말았다. 내가 아닌, 아내의 화였다.


  “오빠 요즘 너무 바빠.”


  주말 저녁, 다음 주의 스케줄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다음 주에는 야근할 것 같아, 근데 어느 요일에 할지는 모르겠어, 그 날이 되어 봐야 알 것 같은데. 아내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아내는 그런 나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외롭고 서운한 감정은 다르다. 아내는 이미 한 달 가까이 그런 감정들을 홀로 끌어안고 있었을 테니까.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는 그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고,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문득 삼 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회사 생활에 지쳐 있던 아내는 끝내 퇴사를 하고 두 달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흔쾌히 아내의 여행 계획에 동의했다. 나도 늘 퇴사를 하고 떠나는 긴 여행을 꿈꿔왔으니까. 동시에,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무려 두 달이나 주어졌다. 나는 조금은 설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달 동안 오롯이 혼자 만의 자유를 즐기는 삶이라니. 아주 잠깐이지만 '혼자 사는 30대 남자의 멋진 삶' 따위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고된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이면 소파에 앉아 홀로 진토닉을 마시며 성공을 음미하는 그런 드라마 같은 장면 말이다.


  아내가 떠난 뒤, 그 장면은 현실이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만의 삶을 음미하기는커녕 외롭기 짝이 없어서 술을, 그것도 매일같이 마셨다는 것이다. 처음 며칠은 왠지 모를 자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평소에는 잘 잡지 못하던 약속도 많이 잡았고, 집에서는 실컷 '혼술'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혼자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텅 빈 집에 있는 것이 자꾸 허전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아내가 없는 두 달 동안 나는 매일 술에 취해 잠들었다. 여행을 떠난 아내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여행을 할수록 ‘여긴 나중에 오빠랑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늘어갔다고 했다. 여행의 막바지에는 밖에도 잘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시는 혼자 여행 오지 않겠다는 일기를.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 깨고, 혼자 걸어다니는 저 1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나는 어둠 속에서 1인분의 비밀과 1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왔어요.
장석주, 박연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난다 출판

  우리는 1인분의 고독에 꽤나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혼자 있는 것,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했고, 그것을 꽤 자주 즐겨왔다. 결혼 전은 물론이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각자의 삶을 방해받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우리는 여전히 혼자로 충분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떤 사이프러스 나무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2인분의 고독’을 덥썩 받아 품습니다. 사랑이란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 거예요.
장석주, 박연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난다 출판

  우리는 여전히 혼자서도 행복하지만,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혼자인 시간도 분명 필요하지만, 곧 함께 있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회사 일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 시간을 지켜내기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둘 모두 온 힘을 다해 그 시간을 지키고, 만들어가야만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팀장님도, 오랜 친구도 아닌 나의 가족이니까. 지금 내 곁에 있는 나의 가족은 아내뿐이니까.


  드디어 나를 괴롭히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른 퇴근을 준비하던 우리에게 팀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다들 약속 있나? 프로젝트도 끝났는데 다 같이 소고기나 먹으러 갈까?”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말했다. 

  “저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그래? 가까운 데면 한 잔만 하고 가. 약속이 어디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서며 외쳤다. 

  “집이요! 오늘 와이프랑 약속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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