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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Jul 02. 2020

청소를 합시다

딩크 라이프, 정말 행복한지 궁금하시다면-

  일요일 오후 두 시. 나는 어김없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이제 막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졸음이 쏟아질 때다. 소파에 반쯤 누워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삼십 분째 인스타그램에 빠져 있다. 방에 있던 아내가 거실로 나온다. 뭔가 큰 결심을 한 눈빛이다. 나는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아내는 창고 문을 열고 청소기를 꺼낸다. 그리고 내 앞에 서서 다이슨 청소기의 방아쇠를 당기며 외친다.

  “청소하자!!!”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은 늘 청소하는 날이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한다는 얘기에 화들짝 놀란다.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게다가 육아도 안 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심지어 빨래도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하는 걸. 맞벌이 부부들은 공감할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곱 시 반, 저녁을 차려 먹고 나면 아홉 시, 그 시간에 청소기를 돌릴 수는 없다. 빨래를 돌릴라 쳐도, 세탁기와 건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새 열두 시가 넘어간다. 평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은 요리와 설거지로 족하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는 늘 청소와 집안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된다.


  청소의 순서와 역할은 정해져 있다. 다년간의 호흡으로 나와 아내는 말하지 않아도 척척 손발을 맞춘다. 아내가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청소는 시작되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거실 스피커의 음악을 트는 일. 청소할 땐 음악 선곡이 중요하다. 적당히 신나면서도 일요일의 여유로움을 놓치지 않는 그루브 넘치는 음악으로. 그러고 나서는 어질러진 가구와 소품들을 정리한다.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들을 정리하고, 침실의 이불도 깨끗이 털어 개켜 놓는다. 이쯤 되면 아내의 청소기 소리가 멈춘다. 이제 아내는 밀린 설거지와 주방 정리를 시작하고, 나는 청소기가 훑고 간 바닥에 물걸레질을 시작한다. 그다음은 내가 화장실 청소를,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 마치 기계 세차장의 커다란 세차 기계처럼 순서대로 착착착 움직여 청소를 끝마친다.


  같이 살면서 깨달은 건 서로의 집안일 취향이 꽤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집안일 중에 빨래를 가장 좋아한다. 평일 저녁에도 가끔 기분이 우울할 땐 세탁기를 돌리고 다 되기를 기다리며 맥주를 마신다. 외국 드라마에서 런드리 샵 장면을 너무 많이 본 게 아니냐며 아내는 비웃지만, 난 그 정해진 기다림의 시간과 건조기에서 갓 나온 옷의 뽀송뽀송함을 좋아한다. 반대로 아내는 빨래보다는 설거지 쪽이다. 잘 씻겨진 그릇의 뽀득뽀득 소리, 깨끗하게 비워진 싱크대를 좋아한다. 아내는 아니라고 하지만, 설거지를 하며 발 밑에 기다란 마사지 롤러까지 꾹꾹 누르고 있는 걸 보면 아내는 설거지에서 힐링을 얻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취향이 다르고 맡은 역할이 다르다 보니 우리가 다투는 것도 주로 그 때문이다. 하기 싫다고, 니가 하라고 싸우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맡은 역할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때문이랄까. 나는 아내가 빨래통에 양말을 넣어 놓을 때 벗은 그대로 뒤집어 놓는 게 너무나 싫다. 그 상태로 빨래를 하고 나서 양말을 원위치로 뒤집어 보면 양말 안에 먼지가 그대로다. 이럴 거면 빨래 뭐하러 했냐고!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쿨하게 대답한다. ‘그럼 다시 빨면 되지 뭐. 세탁기에 다시 넣어놔!’ 아내가 주로 화내는 건 역시 설거지 때문이다. 내가 먹고 남은 라면 국물 따위를 그대로 버리면 거름망이 막혀 금세 싱크대가 물바다가 된다. 게다가 내가 자꾸 그릇을 쌓아두는 바람에 모든 그릇에 기름기가 묻어 설거지가 힘들어지곤 한다. 나도 안다, 그런 그릇들은 바로 씻거나 따로 두어야 하는 걸. 하지만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나는 또 아내에게 혼이 나고 만다.


  한 때는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서, 또 주말을 조금이라도 느긋하게 보내고 싶어서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도 있다. 요즘은 어플로 쉽게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고, 가격도 생각만큼은 비싸지 않았다. 주로 금요일 낮에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퇴근을 하고 집에 왔을 때 깨끗한 집을 마주하는 건 너무나 행복했다. 이번 주말은 청소를 안 해도 된다니! 하지만 점점 습관이 되면서 한 달에 한 번 부르던 것이 두 번, 세 번이 되고 나중에는 매주 이용하는 지경이 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매번 오시는 도우미 분이 바뀌다 보니 청소하는 방식도, 정리하는 스타일도, 심지어 빨래를 개는 모양도 매번 달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느꼈다. 이건 좀 우리 집 같지 않은데? 결혼할 때부터 우리 손으로 꾸민 우리의 집, 우리의 방식대로 청소하고 정리한 우리의 집이었는데. 갈수록 생경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깨달았다. 어떤 공간에 정이 든다는 건 단순히 그곳에 머무르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우리 손으로 직접 쓸고 닦고, 어루만지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정말 바쁠 때 한 번씩만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다짐했다.


  다시 일요일 오후, 힘겹게 청소를 마친 우리는 침대로 달려가 몸을 던진다. 서늘한 이불이 피부에 닿는다. 열린 창문으로 살랑이는 바람결이 느껴진다.

은지가 학교에 간 사이 할머니가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말끔히 청소를 하고 침대 커버와 이불, 베개를 햇볕에 바짝 말린 새것으로 바꾸어 놓은 날, 마지막 체육 시간에 땀을 뻘뻘 흘린 후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로 뛰어들면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꿈도 없는 깊고 건강한 잠.
조남주, <귤의 맛>, 문학동네

온몸과 머리가 몽롱해짐을 느끼며 나와 아내는 똑같이 생각한다. 아, 이건 어렸을 적 느꼈던 오후 네시의 느낌인 걸. 맞아 딱 그 느낌이야. 우리는 선잠에 든다. 아무런 꿈도 없는 깊고, 달콤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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