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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낚는 어부 Dec 27. 2023

바다가 좋아 주문진으로 왔다.

프롤로그

그래서 왜 바닷가에서 살려고 그래요?


주문진으로 덜컥 이사 온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옛날부터 꿈이었어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사는 게」


대부분 이런 답변을 드리면 허허허 하고 웃으신다.


나고 자란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지방. 충청도의 작은 도시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를 즐겨 읽었고, 특히 외줄낚시 참치잡이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미지의 대상으로 바다를 동경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20대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또래보다 다소 일찍 가정을 꾸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사실 정신이 없었다.

서울(첫째가 태어났다), 양구, 성남, 동해시(둘째가 태어났다)에서 살았다.


30대가 되어보니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한참 동안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꽂혔었다.

우연히 당시 7살이던 딸아이의 말 한마디를 통해 얻은 작은 깨달음을 이야기로 엮어 공동저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책을 써보기도 했다.


「나중에 우리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재밌게 살자.」


입버릇처럼, 아니 거의 가스라이팅 수준으로 아내에게 해온 말이다. 미래지향적으로 사느라 현재를 소모하는 일을 더 이상 그만하고 싶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 그 무렵이다.




돌이켜보면 낭만 51%, 현실 49%였다. 만 31세에 내렸던 일생일대 가장 큰 결심이기도 하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을 앞당겨보자는 호기로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모했던 것인지, 잘했던 것인지는 알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 우리 4인 가족 상황을 먼저 짚고 넘어가 보면, 25살에 결혼하여 이사를 6번 하고 나니 30대가 되어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에서 평균 1년살이를 해온 셈이다.


잦은 이사로 인한 살림들은 세탁기만 제외하고는 버티지 못했고, 사람인 우리도 점점 지쳐가던 상황이었다.


마침 첫째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였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1년살이를 하면서 돌아다녀야 할지, 아니면 한 곳에 정착할지.


둘째가 태어난 동해시에 이어서 속초에 살고 있었다. 바다살이의 삶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정착하는 것으로 와이프와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하게 되었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 산다는 낭만 때문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후, 바로 찾아온 것은 아무래도 현실이었다.

“아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 만큼 너무 행복했던 속초살이였지만 정착을 하려면 관사가 아닌 내 집이 있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속초에 아파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화배우 000가 세컨하우스로 계약했대!’

‘딸기농장 있는 땅 있지? 거기에 KTX역이 생긴다던데?’

그 무렵에 들리던 이야기들이었다. 매매가나 분양가를 보면 정말 억 소리가 났다.


‘감당할 수 있는 빚만 지자.’

아파트라는 게 동네마트 콩나물 한 봉지 사듯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야만 했다. 한창 코인열풍이다 뭐다 뉴스에 나오고 있었고, 영끌이라는 것도 많이 들려왔던 시기였다.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그냥 나도 크게 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수중에 모아둔 돈을 생각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오랫동안 살면 좋을 집을 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주문진은 속초나 동해에 살면서도 가끔 놀러 가던 곳이었다. 주말에 가끔 생각날 때 드라이브 겸 다녀오곤 했다. 그날도 7번 국도를 타고 생선구이를 먹으러 주문진에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길가에 신규분양 현수막을 시작으로 모델하우스도 보였다.


한창 분양 사무소들을 많이 보러 다녔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평수와 구조를 보고 가장 중요한 분양가도 물어보았다.


마침 내가 생각하던 적정선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고, 직관적으로 계약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항상 조심성이 많은 와이프는 조금 주저하는 것 같았다.

주문진항

「정말 여기서 살게?」


「우리 여기에서 살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바다가 있는 아파트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릴 적 꿈이라는 낭만 51%와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되는 우리 통장 잔고인 현실 49%.

19년 1월 11일에 주문진 신축 아파트에 계약금을 치렀다. 입주예정일은 21년 2월.  

그렇게 주문진살이가 시작되었다.




주문진 수산시장 골목('23.11.18.)

주문진에 살게 된 지 근 3년 다되어 간다. 어느덧 30대 중후반이 되었다.

그동안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를 꼽자면,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최근 행복의 순간은 제철 방어 한 접시였다.


물론 항상 낭만적이지는 않다. 나는 어촌에 살고 있지만 어업이나 양식업, 수산물 유통업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낚시도 할 줄 모른다. 나와 같은 부류를 재촌비어업인이라고 한다고 했다. 심지어 연고지가 아닌 곳에 무작정 살아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바닷가에서 살려고 그래요?

허먼멜빌 《모비딕》中

어릴 적 꿈 때문이라고 대답해도 되묻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예비답변.

사실 지금까지 다시 묻는 분들은 없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끌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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