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주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임산부

by 주민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다가온다. 나는 결혼을 빨리한 편이어서 이제 슬슬 주변에서 결혼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면 가기 힘들었을 터인데 그전에 결혼을 해준다니? 정말 고마웠다. 내 결혼식에 가방순이를 해준 고마운 친구였기에 나 역시도 해주고 싶었다. 임산부가 무슨 짐이야? 일이야 하는 주변의 시선이 있었지만 그건 좀 내 고집이었다. 그리고 아직 24주 차 몸이 가벼운 임신 중기였다.


임신 전부터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분인지 체력이 부친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역시 임신 중에도 임산부 특성에 맞춘 운동이지만 운동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고. 나는 괜찮은데 주변의 시선이 안절부절못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안면이 있는 친구하나에 편한 교통편을 제공해 줄 몽망군과 함께 갔다. 친구 결혼식에 몽망군과 함께 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있은 것 같은데 다녀와 보니 나쁘지 않았다.


결혼식은 무난하게 흘러갔지만 역시나 열정이 몸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졌다. 확실히 두 시간 이상 서 있는 건 좀 힘이 많이 부치고 가벼운 가방이었지만 뭔가 책임을 지고 있다는 건 조금 힘든 일이었다. 역시나 식사시간도 좀 늦어졌다는 것도. 대신 임당검사 하기 전 마지막 만찬을 잘 즐겼다. 역시 결혼식의 꽃은 뷔페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신선함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산물이나 날 것의 음식은 먹지 못하고 생맥주 기계에 눈을 못 떼고 서성이긴 했지만 흡족했던 식사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친구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았다. 오랜만에 친구와 자주 본 나날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결혼할 때는 어땠지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이더라 지금에서 다시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는 코로나시기에 결혼을 해서 하객수도 제한이 있었고 신랑신부, 혼주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썼어야 했다. 매주 단계가 격상되고 격하되는 걸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몇 명이나 수용가능한지 보는 것도 참 스트레스긴 했다. 그래도 그 전 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인지 결혼 준비하는 과정은 참 수월하긴 했다. 특이 사항이 발생해도 코로나라는 이유 하나로 이해가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각자였던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거기다 각자 30년 이상의 세월을 살고난 뒤에 서로를 맞추는 과정이니까. 또 결혼이란 각자 취향과 성향을 맞춰야 하긴 하지만 나 외에 가족 형제들도 큰 범주에서 가족이 되는 거니 그 과정이 순탄하기란 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힘든 길을 가겠다고 정한 친구의 마음을 응원해 주면서 나는 가끔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거나 물론 더 즐거운 이야기를 자랑하는 자리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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