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초3 꼬맹이가 나에게 불쑥 말을 걸어왔다. "에이, 나 그런 거 안 믿는데. 크크. 뭐, 재미 삼아 한 번 해보지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작한 초딩용 심리 테스트였다. 초등학생용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아이가 들고 온 책이 걔네들이 보는 잡지였기 때문이었다. 마녀 빗자루 같은 삽화까지 곁들여 있었기에 척 봐도 수준이 어떨지 알 만했다.
"자, 테스트 1입니다. 친구와 초밥집에 갔다. 어떤 초밥부터 주문할까입니다."
제시된 보기는 세 개. '뭐야. 오지선다도 아니고 달랑 세 개라구?' 안 봐도 비디오. 결과에 딱히 믿음은 안 갔지만 연어초밥, 참치초밥, 캘리포니아롤 중에 나는 참치초밥을 택했다.
"네에. 이 문제의 의미는 나의 숨겨진 매력은 무엇일까입니다!"라며 꼬마가 읊어주는 풀이의 첫 문장은 "당신은 엄격한 자기 관리형"이었다.
'뜨아, 나 왜 찔리지? 이거 장난이 아닌데?' 아이가 읽어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가 바짝 기울어졌다.
"놀라워요! 당신의 내면은 아주 단단해 보이는군요. (흠, 이거 맘에 드네.) 당신이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어요. (흐흐,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지.) 평소에도 본인의 실수를 용납 못하죠? (어라, 어떻게 알았지? 골머리 앓으며 며칠 가기도 하는데.) 가끔은 긴장을 풀고 무슨 일이든 즐기는 마음을 가져보는 게 어때요? (네, 그러고 말고요!)"
얼씨구, 아이가 읽어주는 내내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와하하하, 이거 재밌다. 다음 문제는 뭐예요!" (아깐 이런 거 안 믿는다며?)
나의 재촉에 덩달아 신이 난 아이는 "만족스러우신가 봅니다. 그럼 테스트 2. 영화를 한 편 보자. 어떤 장르의 영화를 고를까. 1번 코믹, 2번 액션, 3번 판타지입니다!"
나도 모르게 고민이 되었다. 풀이에 대한 기대감에 살짝 주저하다가 판타지를 골랐다.
"멋진 선택이시네요. 이 문제는 말입니다. 나는 평소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까에 대한 겁니다."
아! 스트레스라니. 내가 느끼는 것과 테스트 결괏값이 얼마나 비슷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읽어주세요!"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나를 아이는 눈을 내리깔고 실눈으로 보더니 작은 입으로 천천히 읽었다.
"그놈의 공부, 공부, 공부……. 지겹다고 생각하나요? 하지만 세상의 진리를 알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공부도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있어요."
'하아, 이거야 원, 맞다, 맞아. 공부라니. 요즘 내가 글쓰기 공부로 골치가 아픈데 그걸 맞추네. 게다가 글 쓸 때 지겹고 싫은 적도 자주 있지만 또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고 있잖아.' 감탄하고 있는데 아이는 그새 나머지 글도 읽고 있었다.
"어쨌든, 공부를 하다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죠. 동네 산책이라도 나서보는 게 어때요?" 이 말인즉슨 글쓰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신체적인 기분전환을 하라는 거잖아. '그래, 요새 너무 앉아만 있었어. 운동도 띄엄띄엄 기분 내키는 대로 게을리하고 말이야. 암, 꾸준히 해보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또요, 또 문제 주세요."를 외치는 나를 보던 아이가 씨익 웃더니
"아이고, 아쉽게도 마지막 문제입니다. 테스트 3! 길에서 반지를 주웠다. 무슨 모양 일까이네요. 1번 금색 하트모양 반지, 2번 빨간색 보석이 박힌 반지, 3번 얇은 실반지가 되겠습니다."
음, 이건 제일 고르기 힘들었다. '뭘 할까? 다 갖고 싶지만 아무래도 금이 최고! 하트 뿅뿅이잖아.' 이러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1번요!"
"어디 보자……. 이건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하면 좋은 활동을 묻는 문제네요. 모둠활동을 함께 하면 좋겠어요. 서로 모자란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주다 보면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평소에 모둠활동 준비를 철저히 하면 좋겠죠? 그럼,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열심히 해보세요."라며 쿨하게 책을 들고 가버린 아이.
거실에 홀로 남은 나는 진한 여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 참 모둠활동이라구? 그건 근래 내가 빠져있는 만남을 말하는 거잖아. 글 쓰느라 쌓인 답답증을 책 읽고 여러 토론 모임을 하며 해소한다는 걸 단박에 맞춰버렸어. 용하다 용해.'
이게 뭐라고 나는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로와 응원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저 할 일 없고 시간이나 때우려고 하는 게 그렇고 그런 테스트들이라고 생각해 온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