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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16. 2020

음식의 맛에 무엇을 담나요

김치의 재발견

김치통에서 포기김치를 새로 꺼낼 때면 나는 외치곤 한다. "김치 맛보실 분?" 


그 말과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아이들은 3초 만에 쪼르르 달려온다. 참새처럼 쫙 벌린 입에 김치를 쭉 찢어 넣어주면 눈을 감고 오물오물 씹다가 어느새 환희에 찬 표정으로 변하는 얼굴들. 터지는 감탄사 


"와아! 맛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맛을 안 봤다면 모를까 일단 들인 맛은 쉬이 멈추지 않는다. 눈을 반짝이며 붙어 서서 "또 주세요!" "한 번만 더!"를 외친다. 큰아이 한 입, 작은아이 한 입씩 번갈아 주다 보면 반찬으로 쓰려고 큼지막하게 잘라놓은 김치는 순삭이다.

우리 집 식구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성만큼이나 김치 취향도 제각각이다. 큰딸은 김치의 아삭아삭한 줄기를, 나와 작은딸은 흐물흐물한 이파리 쪽을 좋아한다. 김치라고 하면 뭐든 안 가리는 남편은 상관 안 하고 먹지만 정작 주말 말고는 집밥 먹을 일이 없다. 게다가 큰딸은 밥상에 여러 반찬이 놓여 있으면 김치가 아니라 다른 걸 먹기 바쁘다. 나는 작은딸 눈치를 살살 보며 이파리 쪽을 아껴 가며 먹는다. 그래도 접시에는 어느새 줄기만 잔뜩 남는다. 아, 아쉬워라. 김치야, 넌 이파리만 가지고 태어나면 안 되겠니?

하얀 속살의 창백함. 김치 양념이 포옥 스미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양 단단하게 야무진 줄기는 서걱서걱한 식감까지 야멸차다. 반면 잎은 폭신폭신하고 간이 푹 밴 진득함을 안겨준다. 활짝 변신도 가능하다. 따뜻한 공깃밥이나 막 구운 고기를 감싸 안듯이 말아서 집어 먹으면 온몸 구석구석으로 희열이 번진다.

원래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김치 맛을 모르고 자랐다. 소금과 고춧가루 양념에 절여진 그것은 입안에서 물컹물컹거렸고 몸서리치도록 짰다. 우리 선조는 왜 이런 맛없는 음식을 대대손손 만들어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는 막말도 했다. 김치보다는 치킨이 우리나라 전통음식이었으면 좋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도 했다. 김치를 미워하던 내가 그 맛을 제대로 안 건 전라도 김치를 만나고 나서다.

20대 중반에 신참 직장인이었던 나는 숙대 앞에서 잠시 하숙을 한 적이 있다. 거기 주인아주머니가 전라도 분이었는데 음식 솜씨가 기가 막혔다. 하다못해 다른 반찬 없이 카레와 김치만 놓여 있어도 밥 두 공기를 뚝딱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김치요, 우리 조상들이 배추김치만이 아니라 깍두기와 총각김치, 백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깻잎김치 등 감동을 선사하는 김치도 만들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먹은 음식들의 맛에는 사람과 기억이 들어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이 전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황태양념구이, 돼지고기 빈대떡, 소고깃국, 된장찌개 등 엄마의 비법 손맛이 담긴 음식들, 하숙생 시절에 반했던 전라도 음식들, 그리고 시댁 형님의 매운맛 일색인 화끈한 음식들. 나를 사로잡았던 맛들을 회상 하며 나는 내 음식을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 담는다. 아까 작은딸이 동치미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부지런 한 번 떨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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