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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Feb 05. 2024

삶의 보람은 어디에 있나

걸음 열둘 ; 읽고 쓰는 인간은 행복하다


삶의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너무 흔한 질문을 했나 싶어 누가 뭐라고 한 것처럼 지레 움찔한다. 하긴 보람이 뭐 별 건가. 자기만족이며 한껏 업된 기분이고 누가 뭐라 해도 이건 내 낙樂이다 싶은 마음이 들면 사는 보람이 절로 들지. 그래 이런 생각, 왠지 뿌듯하고 기운이 나서 좋다. 계속해보자.


보람의 순간을 세 가지 정도 꼽을 수 있다. 일단 새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빳빳함과 반듯함에 나는 하트 뿅뿅 반해 버린다.  600~700페이지 이상 되는 두툼한 책, 책장에 딱 꽂아두면 그 자체만으로도 삐까뻔쩍 폼이 나고, 읽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땐 베개로 쓰기에도 마침맞은 그런 책은 더 끌린다. 그걸 붙잡고 오래도록 시간을 들이고 손때를 묻혀 지극 정성으로 완독을 하고 나면 책등이 자연스럽게 굽는 형태를 취한다. 나는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새겨진 얼굴과 빛바랜 빈티지 옷이 아름답다고 여기듯 등이 휘어진 책을 가장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책을 읽음으로 나의 생각은 풍부해지고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이제 책장에 고이 꽂으면 되겠다. 하지만 내 보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책을 품에 안고 어린이 혹은 어른이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다른 이들은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질문을 떠올렸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다. 따뜻한 미소를 녹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뻔하던 내 생각은 여러 생각의 갈래에 엮여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머릿속 풍년을 맞는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견들을 만나고 기막힌 해답을 얻으며 예기치 않았던 감정을 접한다. 혼자 읽는 책 보다 함께 읽고 나누는 책이 점점 쌓여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마지막 보람은 약간의 노력을 요한다. 매번 마음만 앞서고 시작하기는 어렵기에 그렇다. 책을 읽고 이끌어낸 풍성한 생각들을 글로 옮겨야 한다. 읽고 말하기는 괜찮은데 쓰기란 매번 쉽지 않아서 부담감이 생기고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할 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글이 나를 또 반하게 한다. 아무것도 없던 하얀 공백에 내가 토해 낸 글자들이 가득 담겨 있는 걸 볼 때의 보람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 느낌을 놓지 못해 나는 쓴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책이 있다. 어쩌면 글을 잘 쓰는 이가 그리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다. 문학은 문학 대로 비문학은 또 그것대로 기막힌 글재주 접할 때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만인 저자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브런치를 필두로 여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개성 있는 콘텐츠와 감각 있는 글쓰기를 연계시키니 그 반짝이는 글들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신간이 쏟아지는 요즘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문학이냐 비문학이냐, 고전이냐 현대문이냐의 갈등을 겪으며 괜히 욕심만 앞서서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을 쌓아두기도 한다. 나는 독서 욕심쟁이라 끊임없이 책을 탐하며 읽을 책을 찾아 나선다.


오늘 내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해 준 문장을 발견했다. 전영주의 <밥하기보다 쉬운 글쓰기>라는 책에 있다.


"아무리 쓰고 또 써도 알아주는 사람 없다는 점도 역시 장애물이다. 누가 기특하다고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매번 쓴 글을 누가 읽어 주는 것도 아니다. 돈도 되지 않고 자랑거리도 되지 못한다. 너무 고독하다. 너무 지루하다. 가도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다."


아! 너무 공감이 간다. 그러나 다음 문장이 진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같지 않은가. 이러한 고독은 특별한 고독이다. 매일매일 자신의 재능에 절망을 느끼며 글을 쓴다고 하자. 그 얼마나 화려한 절망인가."


특별한 고독과 화려한 절망이 힘을 준다. 나는 책이 주는 보람 속에서 글을 써야 할 이유까지 건져 올리고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내가 읽는 것의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즐겁게 읽을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더는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뿐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조지 기싱 -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책 읽기를 좋아하고 쓰고 말하기를 즐기지만 유독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슬기로운 독서생활을 위한 읽기, 쓰기, 말하기의 걸림돌은 다름 아닌 까먹기다. 망각의 파도는 쉴 새 없이 내 머릿속의 책 내용을 싹쓸이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끊임없이 읽는가.


이동진은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한다. 책과 나 사이의 신비로운 그 순간"을 언급하며 "지적인 성취감과 지향성 또한 중요한 독서의 목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1만 권 독서법>을 쓴 인나미 아쓰시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독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은 머리에 남아 있는 부분이야말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응축된 지점"이라며 힘을 실어 준다.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의 도이 에이지는 "읽은 권수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을 변화시킨 문장을 발견하고 찾는데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독서력>의 사이토 다카시도 비슷한 말을 한다. "단 한 줄이라도 나에게 남는 문장을 찾아라" 그리고 그는 "책을 읽으며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각인시키는 출력 독서"를 습관화할 것을 조언한다.



한때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무작정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위 책들뿐 아니라 수많은 책들이 숱한 독서법을 권유하고 충고했지만 내가 얻은 결론은 읽으며 스스로 길을 내야 한다는 것뿐이다. 겪어서 터득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 것이다. 그 길에서 발견한 이정표다. 독서의 힘은 양보다 질에서 비롯된다, 잊음에 고통받지 말고 읽음에 위안 삼아라, 나는 읽는 인간임에 행복해하라, 읽고 더불어 나누어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라. 삶의 보람을 위해 나는 여전히 읽는다.



PS. 오늘은 브런치 작가님들 글에 빠져서 읽느라 하마터면 연재 마감을 놓칠 뻔, 자정 30분 전에 겨우 발행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 이젠 읽기도 좋지만 쓰기 보람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쏟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ㅋ 참, 사진 속 장소는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도서출판 열화당의 책박물관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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