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개봉한 <비포 선라이즈>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로맨스 영화의 전설이다. 나에게도 인생작 중 하나다. <비포 선라이즈>는 유럽여행 중 기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가난한 젊은 미국인 남자와 젊은 프랑스인 여자의 이야기다.
유럽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므로 마냥 가난한 사랑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알고 보면 주인공들은 무리하게 돈을 빌려서 여행을 떠나왔다. 이들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돈도 호텔에 들어갈 돈도 없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사랑에 빠진 후엔 공원에서 밤을 새운다. 이렇다 보니 그들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것은 주로 책 이야기나 사회적 시선의 문제, 인생에 가지는 기대 같이 자신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게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이유가 서로의 배경이 아닌 사람 그 자체였다는 점이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어떨까? 현실에서 가난한 연애는 구질구질하고 눈물겨운 일이 되기 십상이다. 동서고금 어디나 언제나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대개 물질적인 대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에도 케이크 하나 사주기 힘든 형편이라면 케이크를 못 먹어서 슬픈 게 아니라 그런 현실이 슬퍼서 사랑은 우울해지기 쉽다. 게다가 젊은 청춘도 아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케이크 하나 사줄 형편이 안 된다면? 그런 사람에게 사랑은 더 이상 누려서는 안 될 사치다.
당시의 나에게도 사랑과 연애는 사치였다. 우린 고수부지에서 컵라면을 먹고, 자판기 커피나 마시는 데이트를 했다. 그나마 다행은 내가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기라 공연과 영화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고수부지 데이트의 낭만도 하루 이틀이고, ‘결혼할 여자 아니면 돈 안 쓴다.’는 핑계도 매번 써먹을 순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돈도 없으면서 그런 곳엔 왜 갔는지……. 우린 백화점에 함께 갔었다. 명품관이나 브랜드관 그런 데도 아니었고, 할인상품을 모아둔 행사장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여자 친구의 눈이 어떤 가방에 머물러 있었다. 할인가 1만5천 원짜리 가방이었다. 사주고 싶었지만, 사줄 수가 없었다. 신용불량자이다 보니 카드조차 쓸 수 없는 신세였다. 그날은 수중에 단돈 1만 원도 없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비싼 선물 한 번을 못해줬다. 하루는 사귄지 2년이 넘어, 두 번째로 함께 보내는 그녀의 생일날이었다. 큰맘 먹고 홍대 옷가게를 지나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마음에 드는 것 다 고르라며 허세를 부렸다. 수중엔 10만 원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3만 원짜리 원피스 한 벌을 골라들었다.
“이거면 됐어.”
그렇게 선물을 사주고, 나머지 돈으로 맛있는 거 사먹은 게 우리가 부린 최고의 사치였다.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명품이나 비싼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고, 작은 선물에도 정말로 기뻐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연애 3년 차가 되던 해, 난 그녀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금융권과 개인적으로 융통한 돈을 합쳐 수억 원의 빚이 있고, 지금은 신용불량자 신세라고. 이렇게만 말하면 바로 차일까봐, 최대한 짧은 기간 내에 모두 해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어필했다. 그리곤 정성스레 준비한 기획안을 보여주며, 그녀 앞에서 앞으로의 내 계획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말했다. 한동안 긴장감 속에 침묵이 이어졌다. 괜히 말했나 싶었다.
“난 결혼할 사람에게만 돈 쓴다고 해서, 정말로 그런 줄로 알았어요. 그리고 진짜 라면을 좋아하는구나 했었어요.”
가슴이 철컹했다. 내 상황을 전혀 눈치 못 챘었다는 반응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덜덜거리는 고물차로 어린 여자를 꼬시려고 하는 걸 보면 배짱 하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사는 거 누구보다 잘 아니까, 잘 하리라 믿어요.”
‘나를 떠나도 괜찮아.’라는 심정으로 한 고백이었지만 그녀는 나를 다시 한 번 믿어줬다.
난 재기를 위해 정말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녀와 사귄 후부터, 나는 빨리 빚을 청산하고 신용불량자 신세를 벗어나려고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돈 없고 결혼 준비 안 됐다는 이유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녀 앞에서 떳떳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가난했던 연애의 시간들. 그런 상황을 지나왔기에 난 내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드라마 속 낭만적 판타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우리의 사랑은 실패했을 것이다. 사랑은 정신적 동반자를 찾아나서는 것이라는 데에, 우리의 생각은 같았다.
비록 길거리 라면과 자판기 커피뿐이었지만 나는 그 찌질함(?) 속에서 진짜 사랑을 발견했다.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뭔가 결핍된 환경 속에 같이 있어 보아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물론 같이 행복할 사람이라면 풍요 속에서 더 큰 행복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풍요 속에서 만난 사랑은 약간의 고난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사랑은 인생의 고단함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